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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농 Dec 23. 2023

어디서나 달은 뜬다.

태국을 경유해 네팔로 향하다.

삶의 지표가 되는 것들이 있다. 뿌리까지 뽑힐 것 같은 풍랑에 흔들릴 때마다 의지하게 되는 지표들. 누군가에겐 종교일 거고, 동반자일 거고 친구일 수도, 가족이거나 반려동물일 수도 혹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내가 간절해질 때마다 찾게 되는 누군가, 혹은 무엇.


내겐 네팔이, 정확히는 히말라야가 그런 존재다.


여행 전에 설렘이 가득 담긴 사진



누가 들으면 14좌라도 하셨어요 묻겠지만, 그저 두 발로 한 달간 베이스캠프 언저리 다녀온 게 전부다. 그 한 달의 경험이 여행이 끝나고 한참 뒤인 현재에까지 닿아있다. 어떻게? 나도 글을 쓰며 알아볼 참이다. 그 한 달의 매 순간이 내 삶을 지탱하고 채우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 한 순간도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영혼의 몇 조각을 반짝거리는 설산 속에 묻어둔 게 분명하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티베트에서의 7년을 재밌게 보고 가끔 등산을 하던 평범한 사람이 왜 갑자기 네팔에 가야만 했을까. 직장을 그만둔 시점이어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다. 단단히 홀린 게 분명했다. 누가 가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니었고 부러워할 여행간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가고 싶었다. 마치 입이 심심해서 근처 편의점에 가고 싶은 것처럼. 혼자 말이다.


45리터와 25리터 배낭에 한 달간 필요한 모든 것들을 꾸렸다, 아니 욱여넣었다. 터질 것 같은 배낭의 머리를 닫으면 여행 시작도 전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 든다. 친구들은 제발 살아 돌아오라 했다.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산을 걸으러 혼자서 한 달을 간다는 건 꽤나 이상한 일인 것 같았다. 


네팔의 트레킹은 크게

1. 푼힐 전망대 2박 3일
2.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ABC) 7박 8일
3. 안나푸르나라운딩 15박 16일
4. 랑탕
5.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EBC)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것 말고도 짧게 트레킹 하는 코스들이 에이젼시마다 다양하다. 걸리는 기간은 트레킹 중간 지프차를 얼마나 탈 것인가에 달려 있다. 위에 적힌 것보다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날씨요정과 컨디션의 도움이 무척 필요하다.


이 중 안나푸르나 둘레길 격인 라운딩을 끝내고(둘레길이지만 해발 5000미터를 넘어야 한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오는 일정을 잡았다.

계획이란 건 언제나 원대하니까.




          







백수의 최대 장점은 시간이 많다는 것, 그래서 네팔 가는 김에 태국에서 하루 자고 가는 항공을 끊었다. 고생길 전에는 합리적 호사가 필요하다.


방콕행 비행기에 앉아 자꾸 생각나는 일들을 곱씹는다. 그래도 됐던 것일까. 과연 잘한 일일까. 기내식이 나오는 시간에만 힘겨운 눈을 떴다가 의식을 치르고는 이내 다시 잠들었다. 여행 시작 전 며칠들이 참으로 기이한 나날들이었다. 그 일들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이젠 아무 의미 없다. 오래 빨아 물이 다 빠진 수건처럼 바래진 기억들.







태국은 이번이 세 번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고 있는 것이 좋다. 미소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용서되는지. 리조트에 도착한 순간 며칠 더 묵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가방을 내려두고 눈여겨본 근처 노천 푸드코트로 향했다. 냅다 앉아버리니 아주머니가 메뉴를 가져다주셨다.


종류가 너무 많아 페이지를 계속 넘긴다. 태국이니 해산물을 먹어봐야지. 영어로 말하니 갸우뚱하신다. 태국에 와서 한국인이 태국인한테 당연한 듯 영어라니, 내가 오만했다. 최소한의 예의로 그 나라의 언어로 기본 회화정도는 숙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뉴 가리키니 오케이, 돈은 선불, 45밧, 1500원 정도. 해산물이 생각보다 양이 적다. 싸니까 괜찮다. 맛은 최고였다.










현지인과 외국인이 적절히 뒤섞인 길가의 노천 음식점에서 조금만 힘을 주면 바스러질 것 같은 의자에 앉아 이름이 길어 기억나지 않는 음식에 취했다. 그리고는 영문 모를 매콤함에 입 안에 가득 차면 맨 밥을 꾸역꾸역 넣은 채로 아직 파란 하늘에 뜬 달 한번 보고, 밥 한입 먹고, 또 달 한번 보고.


시간도, 사람들도 느리게 간다. 내 마음만 동동거리며 바쁘다.




















밥이 너무 매워서 땡 모반(수박주스)도 하나 사 먹었다. 35밧. 통타리조트에서 쭉 직진하다 길 끝에서 우회전 후 코너를 돌아가면 있다.











먼 길 걸을 거니까 마사지도 받았다. Foot massage 180+20(팁). 마똠차도 한잔 주고 마사지도 훌륭했다. 카페에서 조금 더 가면 있다.












   마사지받고 나니 출출해서 현지인들이 줄 서있는 크레페도 먹어보았다. 통타리조트에서 직진하다 길 끝에서 좌회전하면 편의점이 있는데 편의점 가기 바로 전 골목 초입에 있다. 기본 크레페에 이런저런 토핑을 추가할 수 있는데 누텔라 발라먹으니 맛본 크레페 중 최고였다! 입이 길어 어딜 가든 잘 먹는데 태국은 이런 내게 정말 천국 같은 곳이다. 다양해!

   통타 리조트 좋지 않은 후기도 많던데 이 정도 방 크기에 조식 셔틀 포함 그 가격이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재방문 의사 있음. 하지만 조식은 정말 맛없었다.












혼자인 것이 익숙하고 좋았는데 숙소에 놓인 휑한 더블베드를 보고 있자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시큰함이 나를 뒤덮었다.









통타 리조트의 조식. 생존을 위한 맛.








방에서 보이던 전경. 안나푸르나를 향한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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