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견 대기 중 코로나 19 지원 일을 시작하다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근 시간은 집 문을 나서고부터 정확히 2시간이 걸린다. 한강을 건너 출퇴근하는 경기북부민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퇴근시간은 일주일에 3번, 조기 퇴근이 있어 퇴근시간에 덜 붐벼서 좋다.
근무환경은 암센터에서 근무하던 때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상사와의 벽이 높지 않고, 승진과 고과를 위해 이상한 쇼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성적이고 나름 합리적인 곳.
첫 출근을 하고 다음날 전체 회식을 했는데 역시나 이 곳도 점심에 회식을 하고 퇴근 이후의 삶에 터치하지 않는다. 물론, 재해/재난 같은 [위급상황]에 움직이는 곳이라 그땐 예외지만 말이다.
*그 위급상황이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다는 게 함정
일은 간단했다. 한국 정부에 사업비 받으려고 쓴 제안서를 영어로 번역해서 현지 직원들과 공유해서 사업이 시작될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다. 게다가 선임이 미리 해 놓은 작업에다가 마무리만 하면 되는 거라 이틀 만에 끝냈다.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하느냐?
예산집행 관련 업무를 익힌다.
정부 돈을 쓸 땐 복잡한 룰이 있는데 영수처리와 계산서 발행, 일정 금액 이상의 항목에 대한 결재 절차 등을 익혀야 한다. 한층 복잡해진 이유는 한화가 아닌데 한화를 중심으로 집행예산이 기록된다는 점과 현지 환율이 항시 오락가락한다는 게 회계정산의 주요 보릿고개였다. 이제 겨우 같이 쓰고 볼 수 있는 엑셀 창을 만들어서 현지에 보낸 정도다. 한 달이 지나야 회계담당 직원의 작성본을 보고 [불인정 항목]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인정이 안 되는 금액은 기관 내부 자금으로 반납해야 한다.
그 외 월요일마다 오전에 회의가 있고, 오후엔 독서 세미나, 개발협력 세미나 등의 주제로 조사한 내용을 서로 나누고 지식을 쌓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자문위원분들이 국제개발 교수님, 현업 의사 선생님, 자선사업 전문가 선생님들이 계셔서 교양과목 수업 발표하듯이 진행된다. 일 외에 추가로 일이 생겨 귀찮을 때도 있지만 어차피 현지 국가를 조사하고 알아야 하는 게 주 업무들이라 업무관련성이 떨어지는 일은 아니어서 불만을 가질 정도는 아니다.
내가 출근하던 2월 10일경만 해도 지금의 사태까지 진행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코로나 19가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사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의료진/의료물품 부족'이다.
물품은 의료진이 확보되면 그 인프라를 동원해 가져올 수 있는 일이었고, 아마 다른 구호단체에서는 병원과 의료진을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이 한정적이라 정부차원의 지원 외에 추가로 지원하기 어려운 것 같다.
저소득층 대상으로 생필품, 위생용품을 나눠주는 건 많이 하고 있으니 우리는 의료진을 보내자, 라는 취지 하에 주제별로 몇 개의 팀을 나눠서 제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에 나오는 여러 연예인들과 기업들의 기부가 쏟아지고 있지만 문제는 돈이 모인 곳에서는 막상 어디다 풀어야 헛돈 쓰지 않는지 모르겠어서 아직 모인 금액의 100분의 1 정도를 풀었다고 들었다. 물품을 아무리 많이 구입해봤자 당장 100억 원어치를 산다고 해도 그게 다 만들어져서 풀어질 때쯤이면 여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물건만 산다고 해서 적재적소에 배치될 것을 잘 계획하지 않는다면 쓰레기가 되어 버릴 노릇이니까 말이다.
크게 세 가지로 편성되어 업무를 분담했다.
1. 중환자실 확충
2. 경증환자 생활치료센터 확충
3. 저소득층 도시락 배급
위 세 가지로 나눴고, 나는 두 번째 생활치료센터 지원사업에 투입되었다. 큰 틀은 대표님과 담당 대리님이 작성하고 소소한 조직도 그리기 같은 손가는 업무를 덜어주는 게 하는 일의 전부였지만 집에서 있었다면 이런 일을 언제 경험해 볼 수 있을까, 싶어서 경험이 된다 생각하고 함께 하고 있다.
기관은 그럼 보고서만 쓰고 있냐, 하면 그렇진 않다. 제안서 작성 전 현장 점검하실 과장님 한 분 내려가고, 현지에서 도와줄 선생님도 붙다가 기타 다른 사업들도 시작하면서 벌써 두 분이 더 대구로 내려가셨다. 그리고 그 과정이 엄청 비장하거나 대표의 강요스런 설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참 대단했다. 물론, 어려운 일을 감수하는 직업군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는 일이라서 그럴 수 있다지만 매일같이 전쟁터를 뛰 다니는 사람들도 아닌데 직접 뛰어가는 게 멋있어 보였다.
당장 나부터 의료현장에서 손 놓은 지 오래됐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여기서 컴퓨터 두드리는 게 맞나, 내려가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하고 고민만 하다가 주어진 일만 하고 있다.
핑계 있는 무덤을 만들자면, 어쨌든 내가 돈 받는 사업은 방글라데시 가는 게 목적으로 돈 주는 거니까 최종적으로 거기에 가야 기관에서도 세금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질책을 받지 않으니 얌전히 있다가 출국이나 제 때 해라, 하는 것도 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로 우리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제안서를 만들어 제출했지만 막상 업무에 투입된 직원들은 작은 기관이 국가에서 알아서 잘하는 일에 공연히 끼어드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이런 건 국가나 돈 많은 기관에 돈을 모아서 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너무 이름 내세우려고 오버액션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비판적 사고는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만약 그 제안서를 받아준다면 국가가 할 수 있는 여력에 시간이 들기 때문에 분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일 거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니 지금 단계에서는 일단 시키는 것을 잘 완료해서 우리가 손을 더는 일이 될 것이냐, 말 것이냐가 드러나면 끝나는 일이지 않을까.
*현재 대구/경북 지역의 환자를 위한 시설/인력이 부족합니다. 혹, 다른 기관으로의 후원을 생각하셨는데 아직 안 하신 독자님들이 계시다면 저희 기관을 통한 후원도 한 번 고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금 링크>
대구/경북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모금을 합니다. 만일, 위와 같은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도 다른 기관과 병원을 통해서 사용될 예정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globalcare.or.kr/bbs/board.php?bo_table=s3_3&wr_id=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