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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Feb 22. 2020

[출간전 연재] 기혼여성이 외벌이가 되는 길

완벽한 조건은 쉽게 오지 않는다.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취업이 확정되고 그제야 남편은 계산기를 두드렸다.

급여가 예상보다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큰 기금 사업은 기본 300 정도 받는 데에 비해 예산이 10억이 안 되는 사업이다 보니 인건비가 작았다. 체류비도 따로 나오지 않아서 남편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급여에서 절반이 줄고 그동안 받은 체류비와 휴가 비행기표도 없어지니 성에 차지 않았다.


수지가 안 맞고, 굳이 그 벌이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그만두고 가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너무 위험하지 않겠냐는 얘길 하더니 슬슬 반대를 표했다. 하루가 지나고 확고하게 그냥 안 가길 바란다고 확정 지어 얘기하기도 했다.


굳이 안 가도 되는 것이었고 어쩌다 걸린 기회였다. 그 정도 보수받는 일이라면 다음에도 기회가 올 거다. 그러니 1년만 참았다가 나중에 가는 게 어떠냐, 하고 설득을 시작했다.


내 입장에선 매일 오는 기회도 아니고, 비슷한 직무로 하고 싶은 업무가 몇 개월 뒤에 날 지, 그 자리에 내가 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남편과 떨어질 수 없다는 이유로 포기한다는 게, 그리고 남편에 비해 벌이가 적어서 외벌이가 못된다는 게 너무 서러웠다.


이런 나의 입장을 들어 좀 더 생각해 봐주지 않겠니, 하고 100분 토론을 이어갔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남편이 원하는 퇴사를 안정적으로 하는 시간(모아둔 돈으로 전세 구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졸업장도 딴 상태, 본인은 월급 조금 적어도 맘 편히 다닐 수 있는 직장으로 취업)은 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지금처럼 그냥 집에나 있으면서 적당히 공부하며 있어야 하고, 남편은 불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을 끝도 없이 이어가야 한다. 


만약 한국에서 직장을 구한다 해도, 이러나저러나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거주지와 회사의 거리는 멀 것이기에 저녁이 없는 은 지금과 다를 바 없다. 그게 싫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편이 구하는 직장 근처에서 식비나 감당할 정도로 버는 아무 이나 잡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원하는 일이 멀리 떨어져서 주말 부부라도 한다면 난 또 머지않아 그만두게 되겠지.

강력하게 당신이 원하는걸 다 쟁취하는 인생은 없으니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남편은 몇 가지를 제안했다. 본인은 하루 동안 철저한 현지조사(?)를 해서 이주비용 예산서를 만들기로 했고 그동안 당사자인 나는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반대하면 정말 아닌 길일수 있으니까 많이 물어보도록 해라."

라는 말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내가 결혼할까 물어봤다면 친구들은 전부 왜 지금 가냐고, 아직 어린데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남자 때문에 포기하지 마!”그랬을 거라고 했더니 머쓱하니 웃었다.


그래도 물어봤더니 역시나 둘 중 하나를 참아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보낼 거면 모험 없이 안정적인 돈벌이만 하든가, 보낼 거면 롱디의 슬픔을 다시 극복해 보던가,    되면 오빠가 접고 따라가는  맞다고 했다.


가장 찬성하고 나를 지지해준 건 시엄마, 가장 반대하고 안된다고 한 건 친엄마였다. 시엄마는 내 성격에 맞는 일을 하고 사는 게 맞다고 하며 나름 의미 있는 일에 진로를 정하는 거니 괜찮다고 했다. 친엄마는 부부는 떨어지면 안 된다 하며 지금이야 편하게 살아서 그렇지 나중에 혼자서 외벌이 하는 게 얼마나 스트레슨 줄 아냐고 다그쳤다.


두 분 다 틀린 말은 없었지만 내 맘은 가고 싶다는 게 컸다. 코로나가 창궐한 시기에 중국에서 짐도 정리 못하고 나가야 하는 게 좀 애석하지만 아주 오래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상황이라면 여름에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고 한동안은 한국이든 중국이든 감옥 같은 생활을 해야 할 텐데. 어차피 같은 감옥이라면 일하면서 하고 싶었다.


미치도록 일이 하고 싶었나, 싶을 정도로 놓을 수 없는 기회라서 가겠다고 했고 남편은 예산서를 들고 다시 토론장에 입장했다.


결론은, 적자는 안 나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결정권을 내게 넘겼고 어떤 선택이든 원망이나 후회는 하지 않겠다. 우린 부부니까 누가 망해도 내가 망한 거고 누가 성공해도 내가 성공한 거니까 말이다.


그렇게 출근하고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현재 비자서류를 신청(배우자도 함께)했고 발급은 한 달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코로나가 변수가 되는 이 시점, 과연 4월 안에는 출국할  있을지 의문을 가지며 NGO 회사에 출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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