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글을 쓰면 나아질까?

과연, 그럴까?

by 김사눅

깜깜한 침대 속, 핸드폰 화면 불빛은 망망대해를 비추는 등대와 같다. 등대를 따라가다 우연히 발견한 곳에서는 내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한 번쯤 해보고 싶던 일, 아니 한 번쯤 꼭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던 일, 글을 쓰는 일이었다.



글을 언제부터 썼는지, 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아홉 살 무렵 엄마한테 호되게 혼날 어느 날, 책상 끝 귀퉁이에 "곧 진짜 엄마를 찾으러 갈 거야!"라고 마음을 털어놨던 그 순간부터였을까? 힘든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작은 일기장에 고이 적었던 글들은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채 잠들어 있다.


한동안은 일기장을 열어볼 여력이 없었다. 두 살 터울로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일기는커녕 오늘 내 마음이 무슨 색깔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감을 느꼈다. 결혼을 하면서는 딩크족으로 지낼 결심도 했지만, 인생의 계획이 어디 내가 정한 대로 흘러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예상하지 못한 채 엄마라는 칭호를 얻은 내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고, 창살없는 감옥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내 주위에 지인들, 일면식 없는 SNS 속 사람들이 엄마가 된 걸 행복에 겨워 못살겠다는 모습을 마주할 때 마다 나는 이질감을 느끼다 못해 굉장한 패배감마저 일렁였다.

직장에서도 육아휴직 후 내쫓기듯 나오게 된 이후 갈 곳이 없어진 나는 엄마의 역할로도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치솟았다. 그 불안감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분노와 원망으로 향했다. 그때 나는 다시 일기장을 폈다.

그저 보잘것없는 하루였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적는 일기장 위에서는 별 것 없는 하루도 어쩐지 멋들어지게 재포장되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나를 생각할 수 있었고, 잃어버린 내가 조금씩 돌아옴을 느꼈다.



내가 나를 돌아보자, 끈적끈적한 여름 날씨에 들러붙는 아이들의 야들야들한 살갗도, 목구멍을 간지럽히듯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도 마법에 취한 듯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때문에 접었다고 생각한 내 날개가 다시금 피어나려는지 어깻죽지가 간질거렸다.


엄마가 된 후 모든 게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되어 찾아온 것들을 찬찬히 맞이해 보려고 한다. 잊고 있던 가족의 의미, 놓치고 있던 나의 꿈, 흘러가고 말 아이들과의 시간, 잠시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게 해 준 건, 결국 내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나를 도닥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