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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란 Apr 15. 2022

장르는 에세이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드립을 곁들인

드립의 정석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문장이 의미하는 그대로 정말 무엇을 써야하는지 모르겠는 때, 노트 위에 펜촉을 세운 채로 써야할 말과 해야할 말을 고민하고, 팔릴 말을 생각하는 때.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지 나빴다고 헤야할지, 우습게도 그럴 때 제가 썼던 글은 저에게 웃음을 주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그런 의미없는 단어들의 나열로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사실 뭐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쓰고 싶어서 썼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책을 안 읽는다.”     


사실 누구를 특정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들을 수 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말입니다. 근데 우습게도 서울에 책방은 계속해서 생기고 있고, 계속해서 망하고 있어요. 이게 맞나 싶기는 한데 주변에 또 서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은 해요.     


‘책방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책방 주인을 하고 싶은 것일까?’     


얼마 전에 같이 책을 쓰던 작가님에게 카페 인수 제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연희동쪽에 있는 카페였는데, 페이받는 사장이지만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어느정도 자유권과 금액도 보장되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망할 청년내일채움공제 때문에 회사에 발이 묶여있어서 결국 벗어나지 못한 채 아쉬운 기회를 날릴 수 밖에 없었죠.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카페’를 운영하기 보다는 ‘카페 주인’이라는 타이틀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소개팅을 하게 되거나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요즘 어떻게 지내?” 혹은

“어떤 일을 하세요?” 의 대답으로     


“그냥 작은 카페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라고 하면 진짜 간지날 것 같았거든요.     


어느새 이 책을 포함해서 벌써 8권의 책을 썼습니다. 팔리는 책도 있고, 팔리지 않는 책도 있지만 그게 책의 요건은 아니잖아요? 주변 사람들도 이제 제가 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회사원 보다는 작가라는 직업을 먼저 이야기하고는 합니다. 이제 슬슬 리트시험을 준비해야지 생각하고 토익책도 사고, 원서 접수 날짜를 알아보면서 학점관리나 제대로 하자 다짐하면서 강의노트와 교수님 얼굴을 반복해가는 학생이지만요. 회사원, 작가, 학생, 출판사 대표 등등 지칭하는 무엇인가는 많지만 아직 저를 소개할 때 ‘글을 정말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유행하던 성격유형심리검사의 결과처럼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생각하는 유형이라는데 그 무엇인가가 항상 글이었고,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몇 번의 연애경험으로 아직도 연애가 어려워서 너에게만은 진심일지 모르겠는데, 글에서만큼은 정말 진심이고 싶거든요.     


생각해보니 연애소설은 벌써 2편이나 썼고, 나와야할 연애소설은 3편이 남았네요. 아이 시팔 제가 연애를 5번 못해봤는데 책은 5개 썼다는 게 미칠 것 같습니다. 우째도 이렇게 글을 사랑해서 또 책을 내고 있네요. 언제였던가 작가님들과 우연히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다들 어떻게 글을 쓰는지 궁금해서 여쭤본 적이 있었어요.

     

초고를 정해서 쓰시는 작가님,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에서 시작되어 한 편의 소설을 만드는 작가님, 특정 장소에 가서 떠오르는 영감을 담아 시로 만드는 작가님 등등 여러 유형이 있더라고요.     

저의 경우는 ‘옮겨적는다’라는 표현을 쓰고는 합니다.


이전에 같이 일했던 과장님의 영향인지 머릿속에서 보통 ‘수정1’, ‘최종의최종1’을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에 그대로 옮겨적는 경우가 많거든요. 책은 언제 쓰냐고요? 사실 자동차 안에서 제일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제 차안에서는 불륜도 일어나고, 전쟁도 벌어지고, 주인공이 독백을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어 모공에 피가 맺히기도 하거든요. 그때 떠오른 문장들을 모아서 다듬고, 결재를 맡고 아니 결재는 아니네요.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엮어서 노트북과 휴대폰에 옮겨적습니다.


덕분인지 ‘글이 막힌다’라는 경험은 겪어본 적이 크게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이렇게 할까?’ 아니면 ‘저렇게 할까?’ 의 수준의 선택지일 뿐이죠. 제가 좋아하는 말인 ‘경우의 수’처럼 이것 저것 주인공을 움직여보고 제일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의 흐름대로 선택하니 딱히 막힌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카페에 앉아있을 때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못 쓰겠다는 건 아닌데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는 때.     


쓸 말이 없는가? 아니요

할 말이 없는가? 아니요

그전에 쓰던 원고는 끝났는가? 아니요

그럼 왜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는가?     


글쎄요. 언제였지, 글을 쓰는게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그런 것 같아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다가 ‘와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는 못 쓰겠다’였나, 아니면 진짜 별로인 글이 잘 팔리는 걸 보고 ‘와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는 안쓰겠다’라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나요. 욕심인지 열등감인지 알 수 없는, 아니면 알고 싶어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저와 제 글을 좀먹기 시작하면서 무서워진 것 같아요.      


글은 ‘시’ 아니면 ‘소설’이 진짜라며 ‘에세이’는 그저 그런 어린 애들 일기라고 생각한 적도 솔직히 있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떡볶이는 안 먹을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글이 잘 팔리더라구요. 그건 좀 많이 부러웠습니다. 꽤 더 많이.     


저도 제 글이 더 팔렸으면 했고, 유명해지고 싶고, 어떤 날은 ‘유퀴즈’에 나가는 상상을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 이름을 거론하고, 그 뒤에는 제 이름이 나오면서 나도 이제 그들과 같은 선상을 달리는 작가라는 뉘앙스에 말을 하고 있는 상상을 하고는 했어요. 아 이건 좀 부끄럽네요.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나니 글을 쓰는게 무섭더라고요. 재미도 없어지고요.

할 말도 있고, 쓸 말도 있는데 팔릴 말은 없었습니다. 참 나름 평생을 좋든 싫든 글을 써대며 살았는데 팔릴 글이 없다는 건 많이 슬프더라고요. 누군가를 움직이는 글도 좋고, 울리는 글도 좋지만 뭐 팔려야 울리고 움직이는데 팔리지를 않으니 글이 안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바쁜 것도 조금 있었고, 몇 권을 내도 책이 팔리지 않으니 삐진 것도 조금 있었고요. 쓰는게 재미가 없으니 글이 나오겠습니까? 글도 못 쓰겠고, 재미도 없고, 다른 사람 글을 욕심과 열등감에 찍어먹으면서 수개월을 보냈죠. 그러다가 으레 모든 소설과 영화가 그렇듯 문득 책을 써야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냥 제가 재미있어서요.’     


첫 소설이 나올 때처럼, 처음 공저로 책을 만들던 그 설렘처럼 그냥 제가 재미있어서요.     

언제부터인가 굳이 찾으려 했던 문학의 가치와 글의 소중함, 이 글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국민소득의 관계, 내가 그린 기린 그림과 저작권의 상관관계나 그런 것들 다 집어치우고 그냥 제가 재미있어서요.     

출판사도 제가 재미있어서 만들었고, 책도 제가 재미있어서 썼거든요.


독자들, 지인들, 정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제 책을 읽고 웃고 떠들고 기뻐해주면 너무 좋겠지만, 그전에 제가 먼저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먼저 행복하고, 기쁘고 그런 책.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가 만든 책이라지만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제가 먼저 웃을 수 있는 책. 그런 책이요.

너무 큰 뜻을 품게 되고, 큰 숲을 보고 있으니 정작 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해서 재미없는 세월을 보낸 게 아닐까 후회가 되고는 했는데, 이 책을 쓰면서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웹툰의 대사처럼 저의 본질은 제 기능과 능력이 아닌 생각, 사상, 가치관, 그리고 기억들 덕분에 저라는 본질이 독창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거든요.     


앞에서 혼자 웃어놓겠다고 이야기 해놓고서는 당신께 웃어 달라하는 욕심쟁이지만,

그래도 한 번 쯤은 웃었으면 좋겠어요 당신도.

어이가 없어서라도, 나도 그래서 라도, 아니면 그 이유가 없어서라도요.     

아 그래도 책 제목은 나름 마케팅 아닌 마케팅으로 고민 좀 했습니다.


검색해보니까 아직 이런 제목의 책이 없기도 하고, 오마주도 되고 뭐 여러 가지 요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성향상 책의 부제를 붙이자면 아마도 이 책의 키미노 나마에와   

  

[ 장르는 에세이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드립을 곁들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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