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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세 May 26. 2024

내 정체성 찾는 법

가족. 말투. 습관


오이디푸스 신화는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호메로스 이야기에서 신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다가, 소포클레스가 자신의 실체를 찾으려는 영웅의 신화로 바꿨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실체를 추구하는 것을 정체성 탐색이라 부른다. 오이디푸스가 그랬듯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해!"라고 외치며, 자기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은 그리스인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불안정한 투쟁을 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트는 현대 심리학에서 오이디푸스 신화를 중심 개념으로 삼았다. 가족 내의 삼각관계적 투쟁에 대한 이 이야기는, 대다수 고대 히브리나 그리스 신화처럼 모든 문화권 사람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된다. 누구나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부모에게 반항해야 한다. 그것이 오이디푸스 같은 고전이 주는 교훈이다. (롤로메이, 2015) - 신장근 옮김



엄마와 나는 달라

'나'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일까. 늘 하는 질문이지만 답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나는 신화에서 약간의 실마리를 얻었다. 이 첫 번째 여정은 '주 양육자와의 대립 및 갈등'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딸이거나 아들이다. 따라서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부모님이 한국인일 경우,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내게 피를 물려준 자의 입김을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녀는 식사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 정치인을 뽑는 일까지 무수히 많은 영역에서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나와 어머니는 식사와 정치에서 극명하게 다른 입장을 보였다. 엄마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생선류를 즐기는 반면, 나는 얼큰한 찌개를 좋아한다. 엄마는 연식 있는 어른답게 우리나라 국기를, 나는 젊은 감각을 발휘해 푸른 물결을 선택했다. 또, 엄마가 내 몸에 발길질하는 것을 주변 사람에게 자랑하듯 말하곤 했는데, 나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엄마와 다른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엄마가 내게 복종을 요구할 때 나는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엄마에게 반항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한 번만 이렇게 해 봐

두 번째 여정은 내가 자주 하는 말을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권유한다. '이렇게 해 봐', '너 이거 하면 잘할 것 같은데?' 내 독자는 내가 극심한 우울증 환자라 방 안에 틀어박히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픈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 역시 나의 특징 중 하나다. 내 주변에 나처럼 쉽게 우울해하는 사람이 많다. 한 사람만 뽑자면 한 시간 뒤에 만날 봄이 언니다. 언니는 유수 대학의 시각디자인과에 다니지만 걱정이 많다. 취업은 잘할 수 있을지, 제 작품이 사랑받을 수 있는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떠올리며 시름시름 앓는다. 나는 언니의 전폭적인 지지자로써 여러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언니, 엔터 업계 가려면 디지털 앨범을 만들어 봐. 내가 전체적인 기획안을 짜볼게.', '언니는 콜라주를 잘하니까, 실제 인물에 환상 세계를 더해서 작업하는 건 어때?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거지!' 이렇게 나는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건네며, 내 나름의 방식대로 그들을 돕는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다 보면 우울한 기분이 조금씩 가신다. 자주 반복하다 보니 이것은 감정적 해소에서 더 나아가,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솔직 당당한 게 내 매력

세 번째 여정은 내가 하는 일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나는 매일 글을 쓴다. 내 글의 대부분 유년 시절과 가족에 대한 아픔이 주제다.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아빠가 내 연락처를 차단한 일을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내 아픔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못난 부분도 많다. 눈이 너무 나빠서 시력 수술을 받지 못했다. 무지외반증 수술을 해서 검지발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초등학생으로 오해할 만큼 키가 아주 작다. 그렇지만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두렵지 않다. 전에는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괜찮다. 솔직한 태도가 지속되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 자신의 일부로써 기능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




이 글에서 밝혔듯 나는 얼큰한 찌개를 좋아하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실현되기를 바라며 어린이에 대한 억압을 반대한다. 또, 남을 적극적으로 돕는 오지라퍼이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마주칠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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