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계단을 오르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라가는 것은 고되고 실패, 고독, 자책으로 점철된 과거가 등을 무겁게 짓눌러 한 걸음 떼기도 힘들 때가 종종 찾아오지요. 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한 번쯤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해요. 지금까지 얼마나 올라왔는지 뒤돌아보는 시간도요.올라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가슴에 차오를 거예요. 위만 쳐다보고 있으면 고개가 아파요. 까마득하게 남은 길, 올라가야 할 계단 수만 따지고 있으면 힘이 빠지지요.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을 한번 돌아보며 잠깐 숨을 돌리고 힘을 비축하면 내일은 두 칸, 세 칸씩 뛰어오를 수 있게 되기도 해요.(을냥이, 2021)
한 때 나는 TO-DO LIST를 정말 열심히 썼다. 먼저 일어나자마자 할 일들을 써본다. 하루가 끝날 때쯤 내가 달성 못한 일에 빨간 줄을 좍좍 긋는다. 이렇게 내 하루의 끝은 자책의 시간이 되었다. 남들이 사는 '갓생'의 반의 반도 따라잡지 못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소위 말하는 '잘사는 삶'이 내게는 너무 벅찼다.
마치 하늘의 별을 향해 계속해서 손을 뻗는 것 같았다. 이 별은 내게 너무 멀어서 욕망하면 안 되는 건데. SNS에 누군가 별을 품 안에 든 채 자랑하니 나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계획을 세울수록 좌절과 아픔이 내 몸을 잠식했다. 남들 다 하는 건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아 서러웠다. 점차 이건 누굴 위한 계획일까, 정녕 나를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수십 개씩 제작했던 페이지를 다 지워버렸다. 내 몸에 산소호흡기를 단 기분이었다.
이 날이 있은 후 내가 만든 건 DID-LIST였다. 내가 하루에 뭐했지? 떠올려본다. 내가 제때 약은 잘 먹었나, 강의는 잘 복습했나 책은 반납했나, 작은 애정을 담아 내 지난 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TO-DO가 아니라 DID를 써야 한다. 내 욕망, 이상은 현실의 '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아껴주려면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디에 시간을 빼앗겼는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