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년차 디자이너편-
세상에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상에 이름을 알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색맹을 극복한 애니메이터, 냄새를 맡지 못하는 셰프, 들리지 않지만 노래하는 가수, 대본을 읽을 수 없지만 연기하는 배우 등등.. 그중에서도 소위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들만이 세상에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크고 작은 핸디캡을 짊어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허리디스크가 있어도 야근을 감행하는 개발자, 아이를 키우며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PM, 낯을 많이 가려도 회의를 주도하는 팀장님 등..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는 못하더라도 1인분의 몫을 하고 싶기 때문에 오늘도 일을 잘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게 내 핸디캡이니까 좀 봐줘!’라고 크게 외치기에는 보잘것없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계에 부딪혀 좌절했던 여러 순간이 있었음에도 1인분의 가치로 돈을 벌고, 일하는 나로서의 가치를 계속 시험하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나름대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22년 7월, 성인 ADHD 판정을 받았습니다. 유튜브 썸네일에서, 심리테스트에서, 서점의 잘 팔리는 책 표지에서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주의집중력 장애’라는 단어를 본 기억이 있을 거예요.
자극물이 넘쳐나고 집중력은 점점 고갈되는 현대사회에 누구나 한 번쯤은 ‘나도 ADHD?’라는 의구심을 가져본 적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런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슬프게도 제가 정신과에 방문했던 이유는 다른 증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일생일대의 좌절감을 겪으며 심리상담 센터와 사내 심리 프로그램의 상담을 받고 있었어요. 다음 달 저를 기다리는 카드값만이 저를 일하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러다 카드값도 저를 채찍질하지 못하는 순간이 와버렸고, 이대로 가면 전원이 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최선을 다했던 과제도, 다가올 평가도 내팽개치고 산업 역군이 된 이후 처음으로 잠깐 멈추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휴직한 이후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정신과를 찾게 되었어요. 어렵게 찾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번아웃 증후군과 우울증 초기증상 진단을 받았고, 상담과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재밌게도 회사를 벗어난 순간 카이저소제처럼 저의 우울증세는 빠르게 호전되었고, 언제나 그렇듯 좋은 시간은 빠르게 흘러 회사로 복귀하게 되었어요. 번아웃과 우울증상은 어느 정도 치료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집중력은 좀처럼 돌아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컨디션이 돌아온 상태에서도 이 정도밖에 못한다니!’ 무력감이 들어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지요. 그때 선생님이 저에게 권한 것이 성인 ADHD 검사였습니다.
의학적 소견 같은 건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제가 느낀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주의집중 장애뿐 아니라 뭔가에 꽂히면 과하게 집중하는 경향, 그리고 충동을 쉽게 조절하지 못하는 경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들이 현실에서 발현되어 시간약속을 못 지키는 수준을 넘어 이중약속을 잡고 (저의 대학교 별명 중 하나가 지각사이코패스였답니다), 방 정리 중 갑자기 일기를 쓰거나, 새벽까지 점토인형을 만드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겠지요. 안타깝게도 증상이 심한 경우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뇌 안에서 주의집중 관련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발달하지 않았거나 손상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적 장애로 분류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도 약물 치료를 통해 집중력과 수행능력에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자질을 갖춘 인재, 다른 사람들을 뛰어넘는 뛰어난 성취 등이 어느 때보다도 주변에 넘쳐납니다.
‘저 사람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재능이 있구나', ‘저 사람은 효율적으로 일하고 핵심 파악이 빠르구나', ‘저 디자이너는 데이터도 보고 코딩도 할 줄 아는구나' 등등 다방면으로 뛰어난 사람들은 제 주변에도, 더 가까이는 저희 팀에서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멀티태스킹, 추진력과 완성도, 꼼꼼함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때는 제가 왜 그런 인재들처럼 뛰어날 수 없는가에 대해 한탄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ADHD 진단을 받고서는 ‘아! 내가 계속 부딪혔던 한계는 이 질병 때문이었구나!’ 꽉 막힌 수도관을 뚫은 것처럼 오히려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저의 자질에 대한 의심보다 저의 질병을 탓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어요. 저의 한계를 인지하 고나니 제가 왜 ‘번아웃'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멀티태스킹에 천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제가 ‘한국어'로도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영어'로 해내야 하는 환경에서 다른 동료들의 성취와 스스로 만든 기대치를 맹목적으로 쫓다가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진단을 받은 이후 제가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려고 더 많은 노력을 쏟는 것보다, 그 노력을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쏟아보는 게 어떨까 싶어 이직을 결심했고, 지금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많이 바뀌었지만 정신과의 문턱이 아직도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심리상담, 미술 심리 치료, 명상 등을 적극 권하던 부모님도 ‘정신과에 꼭 가야겠니?, 기록이 남을 텐데’ 라며 걱정을 표하셨고, ‘그런 증상은 병이 아니라 성격 아닌가?’라고 이야기하던 주변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드러나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경미한 치통을 무시하고 병원 가기를 미루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피하기도 합니다. 여러 이유가 본인 스스로 문제를 인지해도 전문가의 도움을 찾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나의 불편함, 나의 아픔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고 이 상태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니까요. 특히나 뭐든 더 잘 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를 잘 알고 나에게 맞는 신발을 신게 해주는 것이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꼭 질병 같은 핸디캡이 아니더라도 나의 기질, 성향 같은 카테고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인지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나 설명서‘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누구나 어떤 일들은 남들보다 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물론 누구나 기피하는 일은 제외하고요). 다른 사람보다 에너지가 더 필요한 일은 내가 판단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다짐하며 스스로 신발끈을 묶는 시간, 멀리 그리고 더 힘내서 달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레이스를 위한 에너지 비축 또한 내가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번아웃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오랫동안 잘 해낼 수 있으니까요.
저는 남들보다 ‘구조화’와 ‘정리'가 부족하고 ‘시간'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서 일정을 세우고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일정이 중요하거나 여러 일정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달력에 시간단위로 할 일을 미리 입력해 두고 잘 보이는 곳에 띄워둡니다. ‘집중력 장애'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싶어서 재택근무하는 방의 레이아웃을 하루에도 두세 번씩 바꿔보기도 하고, 책상을 두 개 사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옮겨보기도 하다 결국 사비로 공유오피스로 출근하기도 했어요. 스스로의 집중력을 믿지 못하는 저는 길어지는 회의에서는 회의록을 기록해 주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저의 한계를 이해하고 인정하기 전까지는 쉽게 실행해 보기 어려웠던 노력들이었어요.
나아가서는 내가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을 좀 더 열심히, 더 즐겁게 갈고닦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단점이 있지만 이것만은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는 거죠. 산만함과 충동성으로 남보다 쉽게 다른 길로 빠지는 증상을 이용해서 더 많은 채널을 리서치를 하곤 합니다. 물론 핵심에 멀어져 가는 경우도 많지만, 의외로 새로운 곳에서 인사이트를 발견해내기도 하고요. 오랜 과몰입 경험으로 축척된 노하우로 과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진행이 더딘 과제를 해치워버리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개인의 능력치를 위해 터득한 기술들을 어떻게 하면 파트장 역할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앞서 저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열심히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누구나 돌파구를 찾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요. ADHD의 증상과 대처방법을 친절하게 다루고 있는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에서는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자질, 매일 높아지는 기준 때문에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마치 ‘흠’ 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업무능력을 떨어뜨리는 집중력 저하에 주목하게 되고, 결국 ADHD를 진단받는 사람 역시 늘어나고 있는 것이고요. 위의 이야기처럼 ADHD를 가진 저는 사회가 바라는 좋은 인재가 되기는 어려울지도 몰라요. 노력해도 원하는 만큼 성장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제가 스스로를 일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오랫동안 건강한 마음으로 일하고 싶으니까요. 성취지향적이고 속도중심적인 현대사회에서 저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꼼꼼하지 못한 사람, 논리적이지 못한 사람,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등.. 스스로의 흠을 이유로 자신을 ‘일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냉정하게 분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자신을 증명하려는 동료가 있다면, 장점을 더 응원하고 부족한 점은 조금 더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라는 말보다는 나의 한계를 등에 매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오늘도 각자의 흠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