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다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www.gongdong.or.kr) 에서는 공동육아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공동육아는 ‘너와 내가 어울려 함께 세상을 살아가기’입니다.
공동육아는 실제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돌봄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존재로 보고
아이들을 어른들이 필요한 모든 정보를 넣어 주어야 하는 백지상태로 보지 않는 것이며, 아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노란색 바탕에 명조체, 밑줄 쫙으로 강조한 저것이 예삐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 결정적 이유였다!
예삐가 어린이집에 들어 갈 나이 무렵부터 나는 늘 골목과 동네 공터에서 아이들과 놀았다.
셋방살이라 이사도 자주 다녔는데 일곱 살 때부터 아홉 살 때까지 살았던 지축리 동네는 이렇게 생겼었다. 부엌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는 말그대로 방 한 칸, 부엌 한 칸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곳.
고만고만한 살림살이에 또래들을 키우고 있는 이웃은 친해 질 수밖에 없었고 거기 사는 어린이들은 모두 형제자매처럼 어울려 놀았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 엄마들이 나와 수다를 떨면 나는 꼭 끼어서 얘기를 듣다가 ‘어른들 얘기에 턱 받치고 듣는다’ 고 쫓겨났다.
지금은 신도시가 되고 스타필드에 이케아에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논밭이 있던 시골이었다. 잘 상상이 안 되면 ‘전원일기’ 드라마를 생각하시면 된다.
그 동네 아이들은 모두 창릉천 뚝방길을 따라 삼송초등학교까지 걸어 다녔는데 네이버 지도로 쳐보니 구파발역 근처 동네에서 삼송역 근처 학교까지 3km 정도 되는 거리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일찍 학교로 출발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주인집 큰오빠가 학교가자고 외치면 밥 먹다 말고도 뛰어 나갔다. 갈 때는 옆길로 새는 적이 없었지만 학교 끝나고 올 때는 달랐다.
버스 타고 오라고 엄마 준 돈으로 학교 후문 문방구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운동장에서 공기놀이, 정글짐, 그네타기 등을 하며 놀다가 오빠들이 끝나면 우르르 따라 집에 왔는데 박완서 선생님이 어디 갔냐 궁금해 하신 그 많던 싱아는 내가 다 먹어 치웠다. 아카시아가 피면 아카시아 껌 대신 꽃도 씹어 보고 요새는 약에 쓸래도 없다는 까마중도 따먹고 개구리, 도마뱀도 잡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기 일쑤였다.
그때 우리는 개, 고양이뿐만 아니라 개미 잠자리 같은 곤충, 올챙이 개구리 같은 파충류와도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엄마 밖에 없었다. 그 시절 아빠들은 얼굴 볼 틈도 없이 바빴기 때문에 말을 나눌 시간도 없었는데, 어쩌다 시간이 나서 대화를 시도해 본 아버지들은 곧장 ‘선녀와 나무꾼’ 놀이를 시작했는데 늘 인생의 조연 역할을 하는 아버지답게 역할은 나무꾼이 아니라 포수였고 아이는 사슴이었다. 아버지의 총이 아닌 매를 피해 ‘저 좀 숨겨주세요’ 라며 달려 온 사슴은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중무장한 이웃 어른들의 신고로 아버지에게 뒷덜미를 잡혀 끌려갔다.
우리는 꼬리가 9개 달린 도마뱀을 거의 잡았다 놓쳤으며, 새끼개구리를 17마리나 업고 뛰어가는 엄마개구리를 보았고, 제비보다 큰 고추잠자리 두 마리가 샴쌍둥이처럼 꼬리가 붙은 채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UFO 는 한밤중 평상에 누워 있으면 수시로 날라 다녔고 외계인은 수돗가에서 오랜 우주여행으로 갈증이 나던 목을 펌프 물로 축이기도 했고 걔 중 예의를 아는 외계인은 고맙다 며 연탄불을 갈아주기도 하고 갔다. 거인을 정복하고, 아름다운 인어와 사귀었으며, 전장에 나가 수 많은 사람들을 구한, ‘빅 피쉬’ 의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처럼 우리의 허풍과 영웅담은 점점 커지고 늘어났다.
나는 이때의 경험과 추억 덕분에 작가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예삐가 상상력을 통한 창의성과 여유와 유머가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 그러려면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 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니라 나처럼 자연에서 커야 한다고 생각했고 공동육아의 철학을 보는 순간 바로 여기다, 라고 외쳤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병원이 아닌 ‘자연과 멀어지면 죽는다. 라고 말했고 내가 싫어하는 위인이지만 루소도 ‘자연으로 돌아가라’ 는 말을 죽어서도 우려먹고 살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예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오골계를 풀어놓고 기르는 집이 있었는데 우리 쪽 마당까지 넘어왔다. 그 오골계들은 희한하게 빨간색만 보면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라 사람을 쪼았는데 하필 내 가방이 빨간색이어서 자주 오골계의 공격 대상이 됐다. 여름이 되면 오골계 백숙을 꼭 먹어주는데 그때 당했던 것에 대한 소심한 나의 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