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사교육으로 명문대까지

1장.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다.

by 김현희


2. 3천원 때문에 무슨 끝장토론을 하자는 거야!


우리의 가장 오랜 선조이고,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 고리인 ‘루시’ 가 나무에서 내려 온 이후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 살았고 또 살고 있다.

사회적 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관계’ 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소셜 애니멀> 이란 책에서 주변 사람과 문화, 제도와 맺는 사회적 관계에 대해 얘기하며 임계점을 돌파한 빛나는 전문가들은 그들이 지닌 재주와 지능 때문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성공했다고 썼다.

아마 부모와 가족을 제외하고 아이가 태어나 처음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곳이 첫 어린이집일 것이다.


예삐는 2002년 3월 4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첫 등교를 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 본 엄마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떼어놓고 돌아서는 게 얼마나 마음 찢어지는 일인가. 그 날 ‘날적이’ 를 보니 나는 과자를 쥐어주고 도망쳤나보다.


예린날적이2.jpg 예삐의 어린이집 첫 날 날적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일반 어린이집과 다른 점들이 좀 있다.

일단 어린이집을 ‘터전’ 이라고 부른다. 방금 말한 ‘날적이’ 는 부모와 교사가 아이에 대해 쓰는 일기 같은 것이다. 예삐의 날적이는 10권이 남아있는데 매일 쓰지는 못 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읽어보면서 좀 더 열심히 쓸 걸 그랬구나, 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일 때문에 바빴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


공동육아는 부모들이 출자한 돈으로 터전을 구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가입할 때 출자금과 가입비를 낸다. 일반 어린이집의 원비 개념의 조합비를 매달 내는데 매월 방모임과 함께 소위모임이 있었고, 조합의 정관이나 규칙, 세칙 따위를 바꾸려면 학부모와 교사가 모두 모여야 회의를 하고 안건을 다수결로 통과시켜야 했다.

여기서 나는 3천원 때문에 처음으로 공동육아를 때려 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당시 일일 시트콤을 쓰고 있었는데 일의 특성상 밤늦게나 새벽에 끝날 때가 많았다. 집에 가서 오늘 회의 한 걸로 씬정리도 해야 하고 대본도 써야 하는데 공동육아에는 학부모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특히 돌아가며 터전 청소를 해야 했는데 어떤 날은 새벽 3시에 회의를 끝내고 깜깜한 터전에서 청소를 하다보면 내가 무슨 나라를 구할 위인을 키우겠다고 이 짓을 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먹거리나 나들이나 만족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조합을 탈퇴하고 싶은 사건이 발생한다.

조합비 3천원을 올리느냐를 놓고 회의를 하다가 밤을 새고 끝장토론을 하자는 것이었다. 3천만 원을 올리자는 것도 아니고 3만원도 아닌 고작 3천원에, 토론 못 하다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이게 뭔짓이람, 당장 끝내자 하고 싶었지만 그럼 왜 끝장토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끝장토론을 하자고 할 거 같아서 화장실 가는 척 하고 몰래 도망쳤다.

결국 3천원은 올리지 않고 지나갔지만 회의는 방송국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문화는 일반 어린이집과 조금 달라서 24절기와 세시풍속을 챙긴다. 정월 대보름날 때였다. 대학시절 풍물패를 했던 부모님들이 사물놀이를 하고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며 대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고 터전에 모이란다.

쥐불놀이라면 나도 어릴 적에 많이 했던 거라 괜히 신났다. 그래! 이런 게 바로 공동육아를 하는 보람이지, 요즘 애들이 어디 가서 쥐불놀이를 하겠어? 나까지 매우 설레며 그날을 기다렸는데 준비물로 깡통을 구해야 했다.

예전에도 쥐불놀이를 위한 분유깡통을 구하긴 쉽지 않았다. 그땐 거지라는 막강한 라이벌이 있었지만 이제는 거지도 없는데 빈 분유깡통 구하기가 왜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사자니 아깝고 졸지에 우리 엄마, 아빠까지 동원되어 빈 분유깡통을 구하기 시작했다. 어렵게 구한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고 철사로 줄도 연결도 해야 하는데 그날따라 왜 이렇게 추운지. 아이들은 몇 번 돌리다가 재미없다고 관두고 엄마, 아빠들도 조금 돌리다 얼어 죽겠다며 관뒀다. 물론 사물놀이도 손이 곱아서 때려치웠다.

행사 뒤에는 또 평가가 남았다. 만장일치로 다음해부터 쥐불놀이는 하지 않기로 했고 거지처럼 빈 깡통 찾아다니는 일은 그만해도 됐다.


*사족

공동육아 어린이집에는 ‘마실’ 이라고 맞벌이 하는 부모가 늦게 끝날 땐 다른 집에서 아이를 봐주기도 하고 셔틀버스가 없어 엄마, 아빠들이 등하원을 시키며 거의 매일같이 얼굴을 보기 때문에 굉장히 친하게 지낸다.

어느 날, 엄마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다가 남편의 어떤 점에 반했나에 대해 얘기를 했다. 지금은 웬수같지만 옛날 사랑에 빠지던 그 순간을 생각하며 얘기하는 엄마들은 죄다 설레어 했고 우리는 ‘어머어머어머~’ 로 화답했다.

올망이 엄마 차례가 되었다.


“어떻게 반했어?”

“음... 똥 푸는 모습에 반했어.”

“뭐?”


대학교 때 농활을 같이 같단다.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과 마지막에 하는 일이 푸세식 화장실 똥 푸는 일이다. 너나할 거 없이 더럽다고 피할 때 올망이 아빠가 바지를 걷고 자기가 하겠다고 솔선수범 나섰고


“저렇게 솔선수범하는 사람이면 평생 믿고 살 수 있겠다 싶더라고.”


얼굴이 하얗고 세련된 도시남자 같았던 올망이 아빠와 사귀며 본가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시골집에 푸세식 화장실이었단다. 그러니까 올망이 아빠는 어떤 책임감으로 한 게 아니라 맨날 하던 일을 한 것 뿐 이었다.

어찌 됐든 올망이 아빠와 엄마는 지금까지 올망졸망 금슬 좋게 수세식 화장실 많은 집에서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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