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사교육으로 명문대까지

1장.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보내다

by 김현희

3. 공동육아에선 같은 반 할머니를 조심하라!


‘이웃집 엄마를 조심하라!’ 는 공동육아를 시작하며 선배들과 선생님들에게 들은 얘기였다.

공동육아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할 존재는 지금도 역시 ‘이웃집 엄마’ 일 것이다.


“우리 아이는 벌써 한글을 떼고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다중언어교육을 위해 집에서는 중국어와 스페인어를 들려주고 있지요. 어머!!! 예삐는 아직 한글도 못 뗐다고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이웃집 엄마’ 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밤톨이 할머니’ 였다. 밤톨이는 예삐와 같은 반이었는데 그 집도 맞벌이 부부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육아를 도와주셨다. 밤톨이 할머니와 우리 엄마는 하원할 때 자주 만나셨는데 그때마다 공동육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토론하며 핏대를 세우셨다.

애들 엄마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우리 밤톨이를 바보로 만들 작정인 거 같다, 저저 꼬라지를 봐라, 얘기하시면 우리 엄마도 모처럼 말이 통하는 분을 만났네요, 맞장구를 치셨고 그날 밤에 내가 일 끝나고 예삐를 데리러 가면 밤톨이 할머니도 공동육아는 할 게 못 된다 그러시더라, 다른 집 애들은 학원 다니고 공부하는데 거기 애들은 맨날 놀기만 하고 어른한테 반말 찍찍하고 어쩔라 그러냐. 그러다 공부도 못 하고 깡패 되기 딱 좋다, 당장 때려 치고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봐라, 얘기하셨다.

다음날, 등원 때 밤톨이 엄마와 만나게 되면 우리 둘이는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는 친정엄마니 대충 웃고 넘어가지만 밤톨이 엄마는 시어머니한테 무진장 시달렸을 것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궁금해 하실 테니 미리 얘기하자면 우리 어린이집에서 깡패가 된 아이는 한명도 없다. 오히려 선행학습 하나 안 하고 놀기만 했는데 나중에 입시결과가 좋아 나도 신기해했다.


'팥죽할멈과 호랑이' 에서 열연중인 예삐. 호랑이는 정말 울었다.


‘세라 블래퍼 허디’ 가 쓴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에 보면 할머니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에 대해 나온다. 특히 인류 번식의 에이스 카드는 ‘외할머니’ 라고 꼭 집어 얘기하고 있다. 인간뿐만이 아니다. 유인원에게도 할머니의 존재가 중요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400만 전후의 아이들이 할머니의 손에서 길러지고 있고 19세기 일본의 도쿠가와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서아프리카에서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까지 있는 거 보면 양육은 동서양, 과거와 현대에까지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중에 ‘애착이론’ 과 ‘대행부모’ 에 대해 따로 쓰겠지만 여기서는 할머니 얘기만 하겠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되어 어디 물어볼 곳이라도 있지 (하지만 틀린 정보도 너무 많다) 내가 예삐를 키울 때는 PC 통신 시절이었다. 육아 책은 읽었지만 어느 책에도 애가 두 시간마다 자다 깨서 운다는 것은 적혀 있지 않았다. 퉁퉁 불어 내 머리통 만해진 가슴에서 하루 종일 짜도 40CC 밖에 모유가 안 나오자 나는 하늘을 보며 자조적으로 외쳤다.


“이게 바로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이구나!”


이때 엄마가 없었으면 나는 어떻게 예삐를 키웠을까. 그때 산후조리원은 초창기라 지금처럼 좋은 곳도 없었다. 그리고 들어가는 글에서 적었지만 나는 사기를 잘 당한다. 들어갔던 산후조리원에서도 역시 당했다. 왜 그런 곳을 얻었냐고 물어보신다면 홍시가 달아서 홍시라고 했던 장금이처럼 그냥 내 인생이 그렇다.

산모에게 딱딱한 콩자반이 반찬으로 나오질 않나, 기를 쓰고 젖 먹인 후 좀 잘만하면 거실로 모이라 해서 깔짝깔짝 체조 몇 번 한 후, 기저귀 때문에 빨갛게 짓무른 아기 피부에 딱이라는 아토피 크림을 파는 약장사를 시작으로 유축기, 오존 살균기, 유아용 그림책까지 툭하면 집합이었다. 거기다 우리엄마와 시어머니는 아무리 여름이라도 꼭 내복 입고 양말을 신고 있으라 했는데 그딴 거 다 믿지 마, 나의 경험담을 믿으라는 애 셋 엄마가 거실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었다. (사실 더워서 그건 나도 뭐라 안 했다) 그때까지는 어떻게 참았는데 산후조리원장이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해주겠다며 일요일 아침에 불러내 무릎 꿇고 기도하자는 날, 나는 조리원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절대 중간에 내보내주지 못 하겠다던 원장은 마침 몸조리 잘 하고 있냐. 전화한 방송국 PD와 내가 통화하는 걸 듣더니 방송국에서 무슨 프로를 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눈을 똑바로 뜨고 목소리를 깔고 “PD 수첩 작가입니다.” 라고 하자 원장은 환불과 동시에 짐정리까지 도와주며 미소로 배웅했다. 그렇게 돌아 온 집에서 나는 친정엄마에게 천기저귀 접는 법부터 분유 먹이고 (빈 수레는 끝까지 빈 수레였다) 목욕 시키는 법까지 배웠다.

엄마가 없었다면 계속 일하지 못 했을 것이고 예삐도 지금처럼 잘 자라지 못 했을 것이다. 2008년 SBS에서 방송 된 ‘워킹맘’ 이라는 드라마는 일하는 엄마들의 가장 큰 소원은 맘 놓고 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친정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 드라마로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상도 받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출산율은 더 떨어졌으니 1가구 1친정엄마라도 보급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친정엄마는 무슨 죄냐고? 적절한 보상이 따른다면 현명하고 경험 있는 할머니들의 양육 보조는 어른들의 자존감 향상과 사회적으로도 기여가 된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서울시에서 손주를 봐주는 조부모에서 ‘아이 돌봄 수당’ 을 준다고 하던데 이런 정책도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건 집값 때문도 아니고 연애보다 게임이 좋은 남성 때문도 아니고 여성이 이기적이어서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엄마와 아빠가 처음 되어 보는 것이고 혼자서는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 아닐까?


* 사족

서울시에서 ‘아이 돌봄 수당’을 1명당 30만원씩 준다고 하던데 만약 예전에 우리 엄마가 받았으면 임플란트 하는데 보태셨을 거다.

예삐는 매우 활동적이고 두개골이 무척 단단한 아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듯이 쓰면 신나서 날뛰는 돌대가리) 그래서 우리 엄마 작은 어금니 하나가 예삐 박치기에 날라 가고 내 코뼈도 1mm 주저앉았다. 내심 이 기회에 코를 높일 절호의 찬스다, 내가 효녀를 낳았구나, 생각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그 정도는 수술 필요 없이 그냥 살라 해서 1mm 주저앉은 코뼈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엄마랑 그때 얘기를 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눈깔 안 빠진 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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