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상
0. 들어가며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essence)
여기 의자가 하나 있다. 그 물체는 세상에 나올 때 거기에 맞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만든 사람의 의도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목적이 바로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어떠한가? 창조주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빚어낸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의 운명에는 어떤 목적이 담겨 있다는 뜻인가?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은 철저히 그걸 부정한다. 사르트르는 거기에 해당하는 철학자였다.
그런 그가 젊은 시절에 소설 하나를 썼다. 당연히 소설 속 주인공은 세상에 던져진(버려진) 존재와도 같다. 마치 고아처럼.
1. 주인공은 어떤 인물인가?
소설 속 주인공인 '앙투안 로캉탱'은 약 30세 나이에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연금)으로 생활하며 직업은 "역사 연구가"이다. 그는 프랑스의 해안 도시 '부빌'에서 지난 3년 동안 18세기 인물인 '롤르봉 후작'의 생애를 추적하며 그의 전기를 집필하고 있다. 부빌에 오기 전에는 파리에서 살기도 했는데, 사실 그의 고향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 그는 특정 도시에 정착하지 않고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살아온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한마디로 그는 '떠돌이'이다. 확실한 직업도, 가족도, 친구도 없다. 도시를 배회하지만,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고 익명의 그늘에서 지내는 부유(富裕)한 은둔자이자 자발적 아웃사이더이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존재의 ‘뿌리없음’으로 인해 부유(浮遊)하는 정신적인 부랑자이다.
2. 그는 왜 구토하는가?
그가 떠도는 이유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어느 곳이나 처지에 안주한다는 것은 자리를 잡는 것과 같다. 마치 제자리에 놓인 의자처럼. 그런데 주인공은 자기 자신은 의자와 달리 어떤 합목적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 순간 전체의 조화와 질서가 깨지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오직 인간만이 어떤 목적이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물들과 섞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해안가의 조약돌을 집어 들었을 때, 혹은 축축한 땅에서 젖은 종이를 만질 때, 그런 감각을 느끼는 순간 세상과 접촉하고 있는 자기 존재를 동시에 느끼며 역겹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받아들여지지 않고 소화가 안 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거울 앞에서 자기 얼굴을 바라보다 혐오감을 느끼고 얼굴을 거울 표면에 밀착하며 일그러뜨린다.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사물은 일그러지며 명확한 형태를 잃고 하나의 덩어리로 그에게 다가온다.
3. 그는 어떻게 구토에서 벗어나는가?
사방에서 구토를 느끼는 주인공은 한 발 떨어진 관찰자로서 세상을 바라볼 때, 그리고 그 세상이 돌발적인 파격이 없이 평온할 때 안정감을 찾는다. 매일 변화가 없이 벌어지는 거리의 풍경이나, 과거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서 한 인물의 행적을 추적하는 일에서 그는 나름 평온함을 유지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그의 존재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아무리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격리되어 지내더라도 결코 구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그래서 자기가 어딜 가든 무엇을 하던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도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부빌에 머물며 과거 인물인 '롤르봉 후작'의 행적을 좇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단골 카페에서 그는, 자기에게 그동안 평안함을 선사하던 레코드판 속 미국 흑인 여가수가 부르는 재즈곡(그 노래는 수만 번을 들어도 완벽하게 자기가 예측한 대로 진행되는 질서의 세계이기도 했다)을 듣다가 마침내 생전 처음으로 근원적인 결심을 하게 된다. '벗어나지 못한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라고. 마침내 그는 실존이 주는 허무함에서 벗어나 그걸 딛고 그냥 [살아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스스로 [살아내는] 주체가 되기로 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인공이 앞으로 소설을 쓰리라고 결심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더는 구토를 하지 않고 살아가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된다. 사르트르는 그렇게 니체의 위버멘쉬를 소설 속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나가며
소설 구토가 출간된 연도는 1938년이고 정확히 1년 뒤인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유럽 전역에 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넘실거리고 있었기에 인간 존재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가 팽배했으리라 본다. 이미 앞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태동한 실존주의는 이후 철학이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적 흐름을 만들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위상을 지키고 있다. (특히 문학 쪽에서) 요즘 세계정세도 전쟁의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와 연일 두려운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광기에 휘말려 전체주의나 파시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존주의적 사유에서 약간의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