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 스토리

오늘 일지

by 김쾌대

어제는 종로인문학당의 '독서 모임 리더양성 과정' 모임에 참석했다. 선생님께서 모인 사람들에게 각자의 책과 관련한 스토리를 작성해 보라고 하셨고, 생각나는대로 정리해 본 내용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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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쾌대의 책 스토리>


어릴 적 저에게 책은 '피난처 혹은 안식처'(shelter)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비교적 일찍 철이 든 저에게 집(가정)은 전쟁터였습니다. 날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고 싸우셨거든요. 부부가 아닌 원수가 서로 한 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가뜩이나 심성이 여린 저는 매일 밤마다 제 방 침대에 누워서 두 분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울었습니다. 무섭고 진저리가 쳐지고 마음이 불안하고... 마치 공습을 피해 방공호에 숨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집에서 유일한 도피처는 화장실이었고, 거기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참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책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샘터 같은 잡지부터 소설도 많았죠. 그래서 저는 청소년기를 거치며 현실이 아닌 문자로 된 허구의 세상(책)이 익숙했고 거기서 짧은 안식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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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한 이후로 결혼 생활을 거쳐 사업을 하는 긴 세월 동안, 저는 책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했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책보다 더 도망칠 곳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오십이 되면서 죽음이 코 앞까지 다녀간 이후로 제가 다시 일어설 때 책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덤으로 얻은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부모님이 벌인 전쟁 시기 이전에 비교적 평화로웠을 때 제가 가장 행복함을 느낀 순간이 배를 깔고 누워 어린이 명작동화를 읽었던 때였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남은 삶에서 최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300권 정도의 책을 흡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른 스펀지에 물이 스며드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죠. 그리고 저는 2019년에 첫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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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에게 책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양식'(food)입니다. 하지만 그건 오직 제 영혼만을 위한 영양분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타인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공동체의 밥상이기도 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즐기는 축제의 성찬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양식'보다 더 크고 값진 '교제의 애찬'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한 저녁 식사가 제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사건입니다.


그 기분을 그대로 안고 이제 잠자리로 듭니다.

편안히 굿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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