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일지

폭염을 지날 때

오늘 일지

by 김쾌대

오늘 낮에는 차 안의 온도가 42도까지 치솟았어. 숨이 막히는 날씨... 그래도 이건 괜찮은 편이야. 그해 여름은 숨이 멎는 줄 알았으니까.


당신이 떠나고 나는 남았지. 타는 듯한 갈증에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 당신 손에 고인 물을 마시곤 했지만, 사실 그건 내 피였던 것 같아. 자존감이 무너진 자는 한 마리 들개와 다름이 없었고, 그렇게 버려진 개처럼 나는 뜨거운 숨을 내쉬며 녹을 것 같은 아스팔트 위를 꺽꺽 울어대며 미친 듯이 달렸어. 뭐, 이젠 지난 일인데 아직 어젯밤처럼 생생해.


그때 타죽은 해바라기가 보였어. 열망은 죽음과 가깝다는 걸 그때 알았지. 문득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떠올라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지. 외면했던 자가 받아야 하는 외면당하는 형벌을. 그 여름과 이어졌던 겨울이 두 번 더 끝나고 봄이 찾아왔을 때, 난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었어. 물론 해파라기는 아니고. 꽃보다는 나무를 심어야 할 것 같았거든. 꽃에는 누군가를 쉬게 해 줄 그늘이 없으니까.


잘 지내고 있는지? 당신은 어쩌면 '불의 태양 후광'을 달았다고 생각해. 무시당하며 살아서 불가항력적으로 타오르는 권력의지가 멋진 아우라를 뿜어대곤 했으니까. 나는 잘 지내. 길에서 쓰러진 들개는 어쩌면 니체가 말했던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가 아지랑이처럼 온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환영을 본 건지도 모르지.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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