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파먹기

by 쿠쿠

어느 집이고 냉장고를 뒤져보면 오래 전에 사놓은 식재료를 비롯하여 온갖 게 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부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사놓거나 넣어놓고 깜빡 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장보지 않고 있는 냉장고 재료만 파먹어도 한 달은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이 나왔을 게다.

컴퓨터나 하드디스크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쓰던 컴퓨터가 노후화하거나 성능이 떨어져서 몇 번 교체를 했을 테고 그때마다 자료를 옮겨서 쟁여놓는 일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잊고 있었던 자료들이 의외로 많이, 어쩌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게 된다.

물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안 쓰는 물건 그때그때 버리기도 하지만 아까워서 혹은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남겨두었던 물건들이 많이 있다. 평소에는 눈에 안 띄는 장소에 있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가지만 어쩌다 물건을 정리하다가 ‘어? 이런 것이 있었네’ 하며 잊혀졌던 물건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일이 종종 있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 컴퓨터나 저장매체에 담아놓은 자료들이 꽤 많았다. 일부 열어보니 별별 것이 다 있어서 놀랄 정도였다. 게 중에는 써놓고 활용을 못했거나 나중에 써먹으려고 저장해둔 것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데 이런 자료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이때 어떻게 이렇게 잘 썼지?, 이런 정도의 조사와 분석을 했었나?, 와 이런 생각 참 좋았네!’ 등등의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정했다. 새로 자료를 모으고 새 글을 쓰고 하는 노력도 하겠지만 병행하여 옛날에 모아놓은 자료, 써놓은 글들을 재활용하여 세상에 내놓기로 하였다.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료들이다. 다만 당시와 현재의 상황이 안 맞아서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이기에 약간의 수정을 하면 될 것이다.

한참 전에 모셨던 기관장께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여건이나 가용자원이 남보다 못하다고 한탄한들 무엇이 바뀌나? 그 시간에 있는 것을 잘 활용하도록 노력해라’ 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다. 더 가지려고, 더 모으려고 하지 말고 있는 것 갖고 잘 요리하면 될 것이다. 한동안 새로 장보지 말고 냉장고 파먹기를 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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