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오

by 쿠쿠

얼마전 공공도서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빡하는 소리와 함께 이가 깨졌다. 또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그 당시, 식당 관리자한테 항의할까 생각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들 괜찮은데 나만 그러니 내 이가 약한 때문이라고 마음을 바꿨던 것이다.

아마 좀더 젊었을 때라면 보상을 받든 못받든 시시비비를 가리는 행동을 했을 터이다. 최근 들어 내가 더 착해지거나 세상 일을 잘 받아들이는 식으로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고 그저 네 탓, 내 탓 따지는 게 싫어졌을 가능성이 큰 듯하다.

가톨릭의 가르침 중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라는 문구가 있다. 기도문으로 되뇌이고 말은 쉽게 하지만 실제로 많은 일을 내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내 탓 아니고 너의 탓이라고 따지면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남이 순순히 제 잘못이라고 인정할리 만무하고 따지고 따져서 시시비비를 가렸다고 해서 내 마음이 편해질리 없을 것이다. 던지는 투수나 때리는 타자나 모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원하는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 세상이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평소에 여러 가지 훌륭한 가르침을 잘 실천하지 못한다. 그래서 화가 나고 속상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화를 내고 남 탓을 해서 내가 얻는 게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된다. 참 어리석은 일이지만 인간의 성정이 대체로 그러하지 않을까 짐작을 한다.

어차피 인생은 남으로 인하여 덕을 보기도 하고 손해나 피해를 보기도 한다. 차라리 내 탓이오 하면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 경제학의 비용편익 분석 상으로도 순효과가 플러스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얻는 게 다 얻는 게 아니고 잃는 것을 차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개똥철학이냐고, 언제부터 그랬냐고, 물어보면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오래 살아보니 같은 사안이라도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는 점은 분명히 말 할수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내 탓을 하든 네 탓을 하든 마음 편한 쪽으로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p.s: 오래 전에 한덕수 전총리를 기관장으로 모신 적이 있다. 정치적인, 사법적인 판단은 접어두고 순수하게 개인의 삶으로만 생각해보면, 인생 참 알수 없구나 싶기도 하다. 꽃길을 걸었고 능력이 있었고 인품도 좋았던 분인데 한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니 이런 반전이 또 있을까? 누구라도, 어느 날 눈 떠보니 수감되어 있는 상황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고 운명은 참으로 난해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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