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증후군에 걸려 배에 왕자를 그려 넣었다

by 산토니

1.

2015년에 새집 증후군에 걸린 적이 있다. 새로 지은 동탄 상가주택에 첫 입주자로 들어갔을 때였다. 갈 때부터 새집 냄새가 너무 심해 보일러도 틀고 피톤치드도 뿌려봤지만 역시나, 콧물도 줄줄 나고, 약한 천식 기운까지 얻었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운 건 두드러기였다. 어디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몸에는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손으로 그으면 그은 자리를 따라 붉게 부풀어 올랐다.


대학병원에 가 보았다. 교수님은 약효 좋다는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해 주셨다. 빠짐없이 꼬박꼬박 챙겨 먹었지만 증세는 생각보다 쉽게 낫지 않았다.


친구 둘을 불러 사우나를 갔다. 땀을 빼니 기분도 상쾌하고 상태도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천식도 가라앉고 피부도 이완된 느낌. 나는 기분이 좋아져 손톱으로 배를 긁어 왕(王) 자를 그렸다. 몇 초 뒤 손톱자국은 두드러기가 되어 부풀어 올랐다. 그럴싸한 복근모양 두드러기가 만들어졌다.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2.

팔이 부러진 적이 있다. 하필 오른쪽 팔꿈치 뼈 하나에 금이 갔다. 오른팔 전체에 깁스를 했고 꼼짝없이 왼손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다. 코딩도 왼손으로, 밥도 왼손으로, 화장실도 왼손으로 처리해야 했다.


오른팔이 망가진 김에, 그땐 여자친구였던, 아내에게 왼손으로 편지를 썼다. 언제 내가 왼손으로 쓴 편지를 줄까 싶어서. 글꼴은 무척흘림체에 글씨 크기는 특대로. 멋대로 휘갈겨 쓴 편지였다. 글씨는 너무 컸고, 무엇보다 팔 힘이 너무 많이 들어서 몇 줄 쓰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편지가 독특하긴 했던지 얼마 전에도 아내가 그 편지를 꺼내 읽으며 웃는 것을 보았다.


3.

코로나 초창기에 갑작스럽게 외부 활동을 줄이면서 살이 확 쪄버린 적이 있다. 몸무게는 순식간에 5킬로그램이 늘었고 그중 8할은 배에 쌓였다. 지방이 어디 쌓였는지 과학적으로 재본 적은 없지만 눈바디가 그렇게 말했다. 누가 봐도 뚱뚱한 배였다.


IMG_7877.HEIC 뚱뚱한 배의 이점: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발살바 호흡


예전에 본 웨이트 트레이닝 교재가 생각났다. 왠지 몰라도 책 귀퉁이 삽화에 뚱뚱한 배의 이점이 나와있었다. 배가 많이 나온 체형은 허리 안정성이 좋다고. 장난이 아니라 진지한 어투로. 이미 발살바 호흡이 된 것과 마찬가지라 스쿼트를 고중량으로 할 때에도 허리를 쉽게 다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음, 생각보다 좋은 점이 있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스쿼트를 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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