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이보그가 되길 거부할 수 있을까?"
사실 난 이미 스스로를 사이보그로 보고 있다. 인간만의 능력이라는 사고 능력을 AI에 많은 부분 위임하고 있으니까. 뇌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했다고 본다면 이건 정의 그대로 사이보그가 아닐까?
그래서 생각해봤다.
나에게 더 많은 신체 기관을 교체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혹은 누구에게나 그런 가능성이 열린다면 나는 기꺼이 사이보그가 되길 선택할까? 다리를 기계로 교체한다면, 무쇠팔로 갈아 끼운다면,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안구가 주어진다면. 뇌도 기계에 맡겼는데 다른 거라고 못 할 이유가 무얼쏘냐. 나는 사이보그가 되길 택할 것 같다.
할 수 있다면 날개를 달고 싶다. 퇴근길 한강을 가로질러 강남에서 강북으로 건너갈테다. 새들보다 높게 날아서 새똥에 맞을까 피해다니는 일 없이 안전하게 다닐테다. 물론 고장이 나지 않는다면. 다른 기관보다 날개가 고장났을 때 생길 일은 특히나 걱정이 된다.
위장도 튼튼하게 기계식으로 달면 좋겠다. 맛있는 음식들 먹방러처럼 잔뜩 먹고도 탈 나지 않는 위장으로. 하지만 영양 섭취는 직접 하고싶다. 그 때가 오면 연료로 음식을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다운그레이드다. 먹는 즐거움은 넘치는 활력보다 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요소다. 내가 살이 찌고 싶지 않다고 먹는 걸 꺼리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절대미감은? 사이보그라면 혀도 갈아끼울 수 있을 터인데, 절대미감을 위해 혀를 갈아끼울까. 그것도 역시 아니다. 내 혀는 불완전해서 완벽하다. 가끔 무뎌지기도 하고, 같은 맛도 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착각이 내 혀를 완벽하게 만드는 점이다. 굳이 완벽한 미감을 위해 갈아끼울 필요는 못 느낀다. 나는 안성재 셰프보다 무딘 혀를 가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야기가 샜지만, 아마도 나는 내 신체의 많은 부분을 거리낌 없이 기계로 갈아끼우리라.
일종의 FOMO 도 작용할거다. 옆 동네 김씨는 물 속에서도 숨 쉬면서 다닌다더라, 앞 동네 박씨는 잠도 안 자고 3일간 지리산을 종주했다더라, 너만 아직 걸어다니냐, 등등. 부러움 반 조급함 반, FOMO에 등떠밀려 너도나도 사이보그가 되러 달려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세상이 오면 신체발부수지부모를 지켜내는 사람을 대단한 위인으로 치켜세울 것인가 시대착오적인 인간으로 여길 것인가. 자연산 육체를 유지한 이들이 어느 쪽이 되었든 희소하고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상상해보면 사이버펑크같은 세상이 꼭 디스토피아적이진 않을 것 같다. 지금의 기준에는 흉측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는 빨리 적응할 것 같다. 또, 그 안에서 균형이 생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