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진의 호동거실 다시 읽기 1

오경이 되어 새벽종 울리면

by 박동욱

[1] 오경이 되어 새벽종 울리면

五更頭晨鍾動 오경이 되어 새벽종 울리면

通衢奔走如馳 넓은 거리를 말달리듯 내달리네.

貧求食賤求官 가난한 자 밥을 찾고, 천한 자 벼슬 구하는

萬人情吾坐知 온갖 사람 마음을 난 앉아서 아네.


[평설]

이 시는 새벽녘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 느낌을 적은 것이다. 조선시대 새벽종은 오경에 울렸다. 서거정(1420~1488)의 「동짓날 새벽에 일어나다[至日曉起]」에 “동짓날이 바로 오늘인데, 새벽종이 오경을 알리는구나[亞歲是今日 晨鍾報五更]”라 나온다.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욕망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간다. 이언진은 마치 방관자인양 그들을 지켜본다. ‘걷거나 달리는’ 사람과 ‘앉아있는’ 시인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세상 사람들이 먹을 것과 지위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우선 그는 벼슬을 구하는 일을 아주 천하게 보고 있다. 그의 시에서는 전반적으로 관리에 대한 부정적인 언사가 주를 이룬다. 음식을 구하는 일도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여기서는 의미를 조금 달리하였다. 당나라 때 시인 맹호연(689~740)이 “하늘을 뚫고 치솟는 기러기와 고니를 부러워하고, 닭이나 오리가 먹이 다툼을 부끄러워하네.[沖天羨鴻鵠, 爭食羞鷄鶩.]”라는 말에서 보듯, 밥을 구한다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궂은일도 마다 않고 맹목적으로 산다는 뜻으로 쓰였다.

『도덕경』에 “대문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의 사정을 안다[不出戶, 知天下]”라는 말이 있다. 집 밖을 나가지 않고서도 천하의 사정을 다 안다는 뜻이다. 3,4구는 이러한 노자의 구절과 생각이 맞닿아 있다. 시인은 한양의 골목 안 어느 지붕 아래 앉아서 이른 아침의 종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내달리듯 분주하게 사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그가 앉아서 알아낸 것은 노자나 소강절이 표방한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바로 사람들의 인정세태(人情世態)였다.


[어석]

전체가 3자+3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제2구에서 通衢/奔走如馳 라 변화를 주었다. 물론 通衢奔/走如馳라 읽어도 뜻이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