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진의 호동거실 다시 읽기 2

우상이며 해탕이라

by 박동욱

[2] 우상이며 해탕이라

一虞裳一蟹湯 우상(虞裳)이며 해탕(蟹蕩)이라,

我友我不友人 나는 나와 벗을 삼고 남을 벗 삼지 않네.

詞客供奉同姓 글쟁이로는 이백(李白)이 성씨가 같고

畵師摩詰後身 환쟁이로는 왕유(王維)의 후신이라네.


[평설]

이 시는 이언진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을 잘 보여준다. 우상(虞裳)은 순(舜)임금의 의상(衣裳)이란 뜻으로, 이언진의 자이고, 해탕(蟹蕩)은 해안탕(蟹眼湯)의 준말로, 찻물을 끓일 때 처음 끓는 물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이언진의 호(號)이다. 다른 사람이 해탕이란 호를 언급한 사례는 나오지 않는다. 제1구의 의미는 간소한 옷차림에 물을 끓여 차를 마시는 자신의 소박한 생활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제2구에서 나는 나를 벗 삼고 남과 벗 삼지 않는다는 전언은 이언진이 처음 사용했던 말은 아니다. 이용휴나 유만주도 비슷한 의미를 사용한 바 있고, 이덕무는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라고 자호(自號)하기도 했다. 벗은 타인으로 상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벗 삼는다’라는 말은 인정욕구의 좌절이나 사회적인 출로(出路)의 봉쇄(封鎖)를 의미하고 있어 자폐적이고 절망적인 토로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언이 부정적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존재 증명을 세상과 타인에게 내맡기지 않겠다는 다짐이 내재되어 있으니 돌올(突兀)한 자의식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제3,4구에서는 중국 사람에 빗대어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 빗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모습은 그의 시편에서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글로는 이백을, 그림으로는 왕유에 빗댔다. 이백은 같은 성씨라는 점에서 동일시했고 왕유의 후신이라고 한 것은 왕유가 “이승에선 잘못되어 사객(詞客)이 되었는데, 전생은 분명 화가였으리라[當世謬詞客, 前身應畵師]”를 받아서 말한 것으로, 그림은 왕유만큼 좋아하고 잘 그린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또 왕유는 사객(詞客)은 만족 못하고 오히려 화사(畵師)임을 자부했는데 비해, 이언진은 사객과 화사를 모두 끌어와 자기 정체성으로 삼았다.

이언진은 이백과 왕유를 자신의 정신적 두 모델로 삼았지만, 사실 이백과 왕유 두 사람은 서로 간에 한 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은 냉담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각각 사귀었던 왕창령, 이기, 기무잠, 맹호연, 장구령, 장열 등등 수많은 교제 인물군이 절친하면서도 깊은 우정을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일화도, 주고받은 시도, 연관된 사건도 전혀 없다.


내가 성사집(成士執)에게 물었다.

“우상(虞裳)이 자칭해서 마힐이 자기의 전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집이 말했다.

“일본에 있을 때 그가 그린 도해육범도(渡海六帆圖)를 보았는데 별로 좋지 않았으니 이는 구양수(歐陽脩)의 자칭정사(自稱政事)와 같은 유이다.”


이덕무의 기록을 참고해 보면 그의 바람처럼 그림 솜씨가 뛰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그 자신을 어떻게 기억했을까. 검소한 옷차림에 차를 즐기는 소박한 삶을 살고, 자신을 가장 친한 벗으로 두며, 글로는 이백이 그림으로는 왕유가 되고 싶었다.


[어석]

공봉(供奉):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을 이른다. 한림공봉(翰林供奉) 벼슬을 지냈다.

마힐(摩詰)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자. 왕우승(王右丞)이라고도 불린다.


왕유.jpg


매거진의 이전글이언진의 호동거실 다시 읽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