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럿거라’ 소리가 천둥이 치듯 하니
[3] ‘물럿거라’ 소리가 천둥이 치듯 하니
呵殿聲如雷過 ‘물럿거라!’ 소리가 천둥이 치듯 하니,
人避途家閉戶 사람들 비켜서고 집들은 문 닫누나.
三歲兒止啼號 세 살짜리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니
進賢冠眞畏虎 벼슬아치 정말로 범보다도 무섭구료.
[평설]
이 시는 관리들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공자(孔子)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 하여 가혹한 정치가 사나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다. 그런데 이언진은 벽제하고 지나가는 관리의 행렬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말한다. 관리가 펴는 정사(政事)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관리 자체를 부정한 셈이다. 이 시는 관리의 행렬을 묘사한 소품(小品)으로 보이지만, 매우 날카로운 비판이 깔려 있다. 이러한 수위는 체재 부정과도 다를 바 없기에 매우 위험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이언진이 자신의 시편들을 박지원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 가져갔다가 혹평을 받은 사실은 유명하다. 이언진은 매우 낙담했고 그것이 하나의 빌미가 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박지원이 아직 풋내기인 이언진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반응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다. 남인(南人)인 이용휴의 제자인 것도, 번듯한 사대부가 아닌 역관의 신분인 것도 마뜩잖았다. 무엇보다도 젊은 나이에 남에게 지나치게 인정받으려는 과도한 의욕과 과잉된 자의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이뿐만이었을까. 박지원은 이언진의 시에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그 생동적이고 탄력적인 언어를 읽었을 것이다. 그런 생동적이고 탄력적인 언어에 숨겨져 있는 ‘날 선 창검’ 같은 언어의 불온성도 함께 감지했다. 연암은 ‘날 선 창검’ 같은 언어의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아는 동시에 그것이 지닌 위험성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면박을 주고 혹평을 쏟아낸 것이 아니었을까.
[어석]
가전(呵殿): 옛날에 관원이 행차할 때 시종(侍從)들이 크게 소리 질러 위엄을 보여서 길을 비껴 서게 하는 것. 벽제(辟除)와 같은 뜻이다.
진현관(進賢冠): 문관(文官)이나 유생(儒生)이 쓰던 관. 지위(地位)에 따라서 관량(冠梁)의 수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