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진의 호동거실 다시 읽기 4

소와 말이 오가면서

by 박동욱

[4] 소와 말이 오가면서

去者牛來者馬 소와 말이 오가면서

溺于塗糞于市 길바닥과 저자에다 오줌 싸고 똥을 누네.

先生鼻觀淸淨 선생은 고요히 비관(鼻觀) 수행하면서

床頭焚香一穗 책상 맡에 한 줄기 향을 사른다네.


[평설]

이 시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시는 바로 앞의 시와 연관이 있다. 결국, 이언진은 벽제하며 지나다니는 고관(高官)들이란 소나 말이고, 그들은 길바닥과 저자에 오줌이나 누고 똥이나 싸며 다닌다고 본 셈이다. 제3구의 선생은 다름 아닌 이언진 자신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존(自尊)을 잘 보여준다. 비관(鼻觀)은 불교 용어로 비단백(鼻端白)을 관(觀)하는 불교 수행법의 하나로, 곧 스스로 자신의 코끝을 관찰하는 법이다. 이언진의 시에는 자신의 정신을 수양하는 내용이 종종 등장한다. 그것이 건강상에 이유에서인지 단지 정신을 단련하기 위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언진이 현실의 부조리에 대응하는 매우 유효한 방법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는 시정(市井)의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스스로 격절(隔絶)과 유폐(幽閉)를 선택한다. 어쩌면 현실적인 출로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방식은 적극적이라기보다 수동적으로 그에게 요구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수양과 청정심으로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려 한다. 이러한 인식은 매우 신랄하면서 날카롭고 짜릿하다. 결국 이 시는 주위의 환경은 더럽고 악취 나는데, 정신의 청정함으로 이를 물리치고 살아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더러운 골목길과 청정한 마음이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어석]

일혜(一穗): 양사(量詞)로 나락이나 조 등 곡물의 이삭 줄기나 노끈 등을 셀 때 쓴다. 여기서는 연기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해 썼다.

매거진의 이전글이언진의 호동거실 다시 읽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