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욱 Apr 27. 2024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36

정약용, 「중희당(重熙堂)에서 영사시를 짓다. 5수 중 그 중 첫 수다.

36. 진평은 장량만 못하다

陳平多奇計(진평다기계)   진평은 기이한 꾀 많았었는데, 

機警出深沈(기경출심침)   기민함이 심오함에서 나온 것이네. 

雖能贊帝業(수능찬제업)   제업을 도울 수는 있었다마는 

終恐壞人心(종공괴인심)   끝내 인심 못 얻은 것 걱정됐으니 

位隆智亦昏(위융지역혼)   지위는 높다해도 흐리멍덩해 

晩節費沈吟(만절비심음)   늘그막엔 주저하며 시간 보냈네. 

令無陸生起(영무육생기)   육가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何由制群陰(하유제군음)   무슨 수로 흉물들 제압했으랴 

留侯乃齊名(유후내제명)   장량과는 이름을 나란히 했으니 

仙鶴混塵禽(선학혼진금)   신선 학과 세속 잡새 혼동하는 셈이네. 

정약용, 「중희당(重熙堂)에서 영사시를 짓다. 5수 중 그 중 첫 번째 수다.[重熙堂賜對 論史記漢書 退述玉音 爲詠史詩五首]     


[평설]

1796년 11월 19일경, 다산의 나이 35세에 규장각에서 『사기영선(史記英選)』을 교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전에서 『사기』와 『한서』의 인물들에 대해 논평을 주고받은 뒤에 쓴 시이다.

한고조 사후에 여후(呂后)와 여씨들이 실권을 차지했다. 진평은 여후와 여씨 일족을 제거하려 했지만, 그들에게 대항하기에는 힘에 부쳐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생각에만 열중했다. 이때 육가(陸賈)가 진평에게 주발(周勃)과 힘을 합쳐서 여후와 여씨들을 제거하라고 충고하자, 진평은 육가의 말을 받아들여서 여씨 일가를 주륙(誅戮)하였다. 만약에 육가의 충고가 없었더라면 여씨 일가를 제거하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진평은 육출기계(六出奇計, 여섯 번 기묘한 계책을 낸 일)라 하여 자주 기발한 계책을 내서 한고조(漢高祖)의 창업(創業)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러나 장량, 한신, 소하 등 한초삼걸(漢初三傑)에는 못 미쳤다. 다산도 시의 말미에서 진평이 장량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진평이 장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상대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진평은 A급이 될 만한 자질이 있었지만, 끝내 A급이 되지 못한 채 B급에 머물러야 했다. 그가 어째서 끝내 A급이 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진평은 언제나 잔꾀로 상대를 제거하는 술수를 썼다. 그러한 술수에는 다른 사람들도 익히 알고는 있지만 도의상 쓰지 않는 방법도 적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유능한 참모는 될지 있을지 모르지만, 최고의 참모가 될 수 없는 이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3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