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륭(屠隆)의 사라관청언(娑羅館淸言)
1. 운명은 다른 길을 걷게 한다
장량은 호랑이가 포효하듯 세상을 뒤흔들었고, 안기생은 표범이 숨듯 바닷가에 은둔하였으며, 이정(李靖)은 용이 승천하듯 기세를 떨쳤고, 위선생(魏先生)은 바위굴에서 몸을 웅크리며 세상을 피해 살았으니 이것이 어찌 재주가 달라서겠는가? 운명이 다를 뿐이다.
子房虎嘯, 安期生豹隱於海濱; 藥師龍驤, 魏先生蠖屈於巖穴. 繄豈異才, 是命不同.
[평설]
장량(張良)은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달아나다가 유방을 만나서 개국 공신이 되었고, 이정(李靖)은 당고조(唐高祖) 이연(李淵)에게 참수당할 위기에서 풀려난 후, 태종(太宗)을 섬기며 큰 공을 세웠고 후에 위국공(衛國公)에 봉해졌다.
안기생(安期生)은 신선인데 진시황(秦始皇)을 만나 사흘 밤낮을 이야기를 나눈 뒤 붉은 옥으로 만든 신발[赤玉舃]을 남겨 두고 떠났고, 위선생(魏先生)은 위(魏)나라의 오하선생(梧下先生)으로, 은사(隱士)였으나 자세한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장량과 이정은 명군(明君)을 만나 뜻을 펼칠 기회를 얻었으나, 안기생과 위선생은 스스로 은둔의 길을 택했다. 이는 그들의 재능이 달라서가 아니라, 운명이 달랐기 때문이다. 인생은 재능뿐 아니라 만남과 선택, 그리고 타고난 운명에 따라 달라진다. 운명은 하늘의 뜻이지만 만남과 선택이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