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성(內省): 나를 살피는 시간 4
3) 책에 미친 사람들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 1478~1548)은 평소 독서를 즐겨, 『자경편(自警編)』과 『근사록(近思錄)』을 품속에 항상 넣고 다녔다.
중종(中宗)이 일찍이 중신(重臣)들을 불러 후원(後苑)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저마다 취해 부축을 받으며 돌아갈 때였다. 한 내시가 떨어진 작은 책자를 주워 올리자, 임금이 말하였다.
“권벌에게서 떨어진 것이로군.”
그리고 명하여 그 책을 돌려보냈다.
권벌은 언제나 책을 품속에 넣고 다녔다. 자나 깨나 주야장천 읽어대니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임금이 주최한 술자리에서 다들 만취해 돌아갔는데, 떨어진 책 한 권을 보고 임금은 대번에 권벌이 흘린 책인 줄 알아챘다. 그가 얼마나 이 책들을 애독했는지 임금조차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책이 권벌이었고 권벌이 그 책이었다.
이산보는 17세에 서울에서 혼인을 하게 되었을 때, 토정이 떠나는 그에게 경계하였다.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 쓰라.”
이산보는 항상 강가 정자에서 글을 읽었다. 어느 날 저녁, 친구들이 그를 배에 태우고 봉은사(奉恩寺)로 갔다. 친구들이 먼저 절에 들어가 놀다가 날이 저물어 돌아왔을 때, 이산보는 배 안에서 태연하게 글을 읽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인 이지함은 조카 이산보를 매우 아꼈다. 숙질간의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어린 이산보가 길가 석불을 보고 ‘천부(天父), 지모(地母)입니다.’라고 답하자 토정은 ‘이 아이는 응당 대인군자(大人君子)가 될 것이다.’ 하였다. 이지함은 조카 이산보가 남다른 자질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아보고 있었다.
장가가는 이산보에게 “짧은 시간도 아껴 쓰라”고 당부했다. 어린 나이에 아내의 치마폭에 싸여 공부를 소홀히 할까 봐 염려해서였다. 하지만 이지함은 괜한 걱정을 한 셈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고 봉은사에 놀러 갔지만 이산보는 배에서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있었다. 친구들이 절 구경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때까지 그는 배가 흔들리는 줄도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독서에 빠져 몰입하게 되면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시간 후로 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는 산사보다 책 속에 빠져 있었다.
정붕이 말하였다.
“냉산의 너머에는 다시 무엇이 있는가?”
송당 박영이 대답하지 못하자 정붕이 말하였다.
“자네가 이 책을 읽을 때 정밀하지 못하니 마땅히 다시 읽게.”
송당이 어쩔 줄을 몰라 다시 정독하였다. 하루는 반복하여 깊이 생각하고 말하였다.
“이 산의 너머에는 다시 푸른 산이 있으니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크게 기뻐하며 이러한 뜻을 가지고 정붕에게 아뢰자 정붕이 말하였다.
“도는 가까운 데 있는데도 먼 데에서 구한다. 격치 공부는 마땅히 절실하고 가까운 곳에서 힘써 환히 깨달아야지, 멀리서 높고 먼 것을 구해서는 안 된다.”
송당 박영이 마음에 새겨 일생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꽤나 정밀하게 스스로 얻은 곳이 있었다고 한다.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은 어려서부터 무술만 하느라 글을 읽지 못했다. 하루는 친구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발심하여 교리 정붕(鄭鵬, 1467∼1512)에게 배우기를 청하였다. 정붕이 『대학』을 가지고 가르치면서 정독하기를 권했다. 박영이 냉산승사(冷山僧舍)에 살면서 계속 글을 읽다가 이미 터득한 곳이 있어 돌아와서 정붕을 알현하였다.
이때 정붕과 박영이 나눈 대화는 ‘냉산 문답’으로 유명한 데 여러 버전으로 전해진다. 앞서 인용한 기록에는 결론만 간결하게 나와 있지만, 구전되는 설화나 박종화의『금삼의 피』등에서는 그 깨달음의 과정이 훨씬 상세하고 극적으로 묘사된다. 이 글에서는 깊은 뜻을 음미하기 위해, 세 번에 걸쳐 문답이 오가는 버전을 따랐다.
정붕은 “냉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처음에는 모른다고 했다가, 두 번째는 ‘푸른 산’이라 했고, 마지막에는 ‘앞산과 같다’고 했다. ‘푸른 산’은 언뜻 정답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부분적 이해에 불과하다. 가장 위험한 것은 부분적 이해를 완전한 깨달음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상의 외연적 확장이 아니라 내재적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자기의 수준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지엽말단적인 것을 알고서 통찰을 얻었다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예 공부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