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2. 내성(內省): 나를 살피는 시간 3

by 박동욱

2) 유혹을 참는 것이 인격의 정도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젊은 시절, 한 여관에 묵을 때 매우 아리따운 여자가 있었다. 선생은 자신의 의지력을 시험해 보고자 그녀에게 머리를 빗게 하였고, 머리를 다 빗은 후 밤이 이미 깊어지자, 곧바로 자리를 옮기라 명하였다.

조광조는 이름난 미남자였다.『어우야담』에는 “조광조는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다웠는데,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매번 ‘이 얼굴이 어찌 남자의 길상(吉相)이겠는가?’라고 탄식했다.”고 나온다. 그래서인지 여색과 관련된 일화가 유독 많다.

위의 예화는 두 가지 버전으로 전해진다. 하나는 일부러 유혹에 빠질 수 있는 환경에 놓인 다음 그 유혹을 스스로 견뎌내며 자신의 의지를 시험했다. 다른 하나는 정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해 다른 집으로 숙소를 옮겼다. 후자가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유혹에 빠질 수 있는 환경에 놓고서 조심하는 것보다, 아예 유혹에 빠질 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퇴계 선생께서 또 말씀하셨다.

“화려함이 마음을 흔드는 가운데서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쉽게 흔들린다. 내가 평소 이를 경계하며 수양해 거의 흔들리지 않게 되었으나,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으로 있을 때 노래하는 기생들이 당에 가득한 것을 보고 문득 일말의 기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다.”


화려한 유혹은 끊임없이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퇴계는 평생의 수양을 통해 이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이런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관직에 있을 때 노래하는 기생들을 보고서 마음이 다시금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그 누가 흔들리지 않으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 빠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 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 멋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바로잡는 사람이다.

당시 지방관에게는 수청을 담당하는 기생인 방기(房妓)가 있을 정도였으니, 기생과의 관계를 피하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기생과의 로맨스도 많았고, 반대로 이를 경계하는 다짐도 많았다.

이항복은 젊은 시절 한 기생을 매우 사랑하여 깊이 정에 빠졌다. 그러나 이것이 방해가 됨을 깨닫고는 친구들을 모아 시를 지으며 그 정을 끊어버렸다. 그 뒤로는 평생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치정(癡情)은 맺지 말아야 할 관계에 속절없이 빠지는 일이다. 그러니 애초에 빠지지 말아야 할 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항복은 친구들 앞에서 공개 선언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진랑(眞娘, 황진이)은 개성 맹인 여인의 딸로, 성품이 호방하여 사내 같았다. 거문고에 능하고 노래를 잘하여 산수를 유람하며 다녔고, 평생 화담의 인품을 흠모하였다. 반드시 거문고를 메고 술을 가지고 화담의 별장을 찾아가, 흥을 다하고서 돌아왔다. 매번 말하길, ‘지족(知足) 선사는 30년 면벽 수행하였으나 또한 나 때문에 무너졌소. 오직 화담 선생은 여러 해 가까이 지내되 끝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셨으니, 참 성인이시로다.’

황진이는 조선의 대표적인 기생이다. 30년 공력의 지족 선사를 유혹해 한 번에 파계(破戒)시켰다. 하지만 서경덕은 달랐다. 황진이가 여러 차례 유혹했지만 끝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서경덕은 정말로 황진이에게 마음이 없었을까? 두 사람이 주고받았다는 시조를 보면 은근한 연정(戀情)이 느껴진다. 황진이는 자신이 결코 유혹할 수 없었던 서경덕을 평생토록 흠모하고 공경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남자가 있다.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 유혹에 넘어가는 남자, 유혹을 이겨내는 남자. 서경덕은 세 번째였고, 그것은 평범한 남자들이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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