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2. 내성(內省): 나를 살피는 시간 2

by 박동욱

1) 혼자 있을 때 비로소 나를 본다

한훤(寒暄) 김굉필(金宏弼, 1454~1504) 선생은 일찍이 짚모자를 썼는데 연실(蓮實)로 만든 갓끈[纓子]을 달았다. 조용한 방에 홀로 있으며 밤이 깊도록 잠들지 않았다. 비록 집안사람이나 자제들도 그가 무엇을 하는지 엿보지 못했다. 다만 가끔 연실 갓끈이 책상에 닿아 나지막한 소리가 들릴 뿐이었으니, 이를 통해 아직도 책을 읽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초립은 누런 골풀로 짠 모자다. 갓끈은 갓을 머리에 고정하는 끈으로, 다양한 재료로 장식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방 안에서는 김굉필의 갓끈이 책상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로 밀려오는 잠을 깨우고 흐트러진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호 탁영자(濯纓子)는 ‘갓끈을 씻는 사람’이란 뜻으로 굴원의 「어부사」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래저래 그는 갓끈과 인연이 깊다.




남명(南溟) 조식(曺植, 1501~1572)은 방 안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졸음이 밀려 오면 칼을 움켜쥐며 잠을 쫓았다. 그의 칼 머리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내면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외부를 결단하는 것은 의(義)다."

창가 벽에는 '경'과 '의' 두 글자를 크게 써 붙여 놓았다. 또 금방울을 차고 다니며 '성성자(惺惺子)'라 부르고, 수시로 흔들어 정신을 일깨웠다.


남명 조식은 항상 30cm 정도의 단검인 경의검(敬義劍)을 차고 다녔다. 칼에는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고[內明者敬],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外斷者義]라는 비장한 각오가 새겨져 있었다. 경의(敬義)에 어긋나는 마음이 생기면 단칼에 베어버리겠다는 다짐이다. 또 방울 두 개를 끈으로 묶은 성성자(惺惺子)도 지니고 다녔다. 방울 소리를 들으며 풀어진 마음을 깨우고 또 깨우며 정신을 다잡았다. 조식에게 칼과 방울은 해이해지는 마음을 단속하는 서늘한 알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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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경의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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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자]




일찍이 전해 듣기로, 재상 허조(許稠, 1369~1439)가 책상 앞에 꼿꼿이 앉아 있을 때, 한밤중에 도둑이 방에 들어왔다. 그러나 공(公)은 잠들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진흙으로 빚은 인형[泥塑人]과도 같았다. 도둑이 떠난 뒤 집안사람들이 이를 알고 안타까워하자, 공이 이렇게 말하였다.

“이보다 더 심한 도둑이 내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으니, 어느 겨를에 바깥의 도둑을 막겠는가?”


허조는 황희와 함께 세종의 치세를 이끈 명재상이다. 그는 꼽추였지만 누구보다 키가 큰 인물이었다. 그는 수응재상(瘦鷹宰相), 즉 ‘마른 매 재상’이라 불렸는데, 이는 깡마른 몸매와 엄격하고 단호한 성품을 빗댄 별명이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도둑이 들었지만, 허조는 마치 인형처럼 앉아 도둑을 막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도둑을 막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내면의 도둑(잡념)과 싸우느라 바빠서 바깥의 도둑까지 막을 겨를이 없었다”라고 답했다. 사람들은 내 마음속에 도둑이 들어왔는지조차 모른다. 설령 알아도 도둑이 마음을 헤집고 털어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작 싸워야 할 도둑은 방치한 채, 쓸데없는 것들과 싸우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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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허조 초상(금호서원, 경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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