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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May 15. 2021

5월 30일에 발간될 책 서문
기이한 나의 집, 박동욱

5월 30일에 발간될 책 서문

기이한 나의 집, 박동욱 지음, 글항아리, 2021 5 30     

혜환 이용휴李用休(1708~1782)는 연암 박지원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렸을 정도로 문제적 인물이었다.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명景命이고, 호는 혜환惠寰이다. 그의 문집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지 않은 데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도 대개 만년의 작품들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흔한 묘지명, 행장, 유사 등 개인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것들을 이상하리만큼 찾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다른 문인들의 문집들에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없다. 그래서 혜환의 생애를 재구再構하는 작업은 짝이 맞지 않는 퍼즐을 맞추는 일 같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시와 산문만으로도 혜환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알기에는 충분하다. 시는 산문처럼 쓰고 산문은 시처럼 썼다. 시는 대부분 만시輓詩와 송시送詩가 차지한다. 만시는 죽음에 대한 통찰을, 송시는 인간애를 보여준다. 각종 한시의 금기禁忌를 위반하면서까지 의미를 전하는 데 주력했다. 산문은 편폭篇幅이 매우 짧지만 발상과 서사는 대단히 독특하다. 할 말만 하되, 남들과 똑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어떤 작품들에서는 독특해야 한다는 특유의 강박까지 느껴진다. 이 점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그처럼 개인과 자아 문제에 천착한 작가도 많지 않다. 그러한 문제의식은 고스란히 문학론과 작품에 반영되었다. 그는 자기다운 글을 자기만의 형식으로 직접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바탕에는 엄청난 독서가 숨어 있었다. 기이한 책들을 구해서 수장收藏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 그의 글들은 기존의 것들을 충실히 이해한 뒤에 얻은 궁극의 성취였다. 달라지기 위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같아지다 보니 끝내 달라져버렸다.

그동안 이용휴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일평 조남권 선생님과 함께 『혜환 이용휴 시전집』(소명출판, 2002), 『혜환 이용휴 산문전집 1, 2』 (소명출판, 2007)을, 송혁기 선생님과 함께 『나를 찾아가는 길』(돌베개, 2014)을 펴냈다. 혜환의 남아 있는 모든 작품을 한데 모아 역주했고, 그중에 소개할 만한 산문을 뽑아서 평설을 달았다. 이번에 평전을 쓰면서 이제야 혜환과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다.

매사에 맏형처럼 푸근하고 넉넉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박경남선생님, 오래전부터 함께 만나왔던 내 친구 송혁기 선생님, 그리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해준 하지영 선생님까지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같은 평전 팀으로 이분들과 함께 공부했던 시간을 눈물겹게 그리워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 이들이 예전에 함께 공부했던 추억 속 인물들로 기억될 게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여전히 서로에게 삶을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도반道伴들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쓰는 시간은 개인적으로 가장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지낸 시간이기도 했다.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였으나, 결국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안도감과 아쉬움이 함께 남는다. 얼마 전 이양연의 시집을 옮긴 『눈 내린 길 함부로 걷지 마라—산운집』(소명출판, 2021)을 펴냈다. 그리고 이 책 『이용휴 평전』을 펴냄으로써 올해 석사·박사학위 논문 주제였던 이양연과 이용휴의 책을 함께 펴내게 된 셈이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그저 하루하루의 일과를 열심히 살아본다. 끝까지 버틴다는 뜻을 담은 영화 「록키」의 배경음악 「Going the Distance」는 나에게 언제나 힘을 가져다준다. 삶이란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지막 라운드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버텨가며 또 한 권의 책을 펴낸다.     


2021년 5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박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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