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붙인 글 92

-조선의 좌우명-

by 박동욱

무서운 백성들


(…)

백성을 하늘로 삼을 것이니

하늘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며

백성을 물에다 빗대었으니

물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네

하늘도 아니고 물도 아니며

또 하나의 크게 험한 곳이니

그 험한 것이 무엇이건대

평평한 땅에서 일어나는가?

어리석고 어리석은 구민(邱民)은

서울과 시골에 퍼져 있으니

평소에는 일이 전혀 없어서

다스리기 쉬운 것도 같지만

한 번의 소홀함이 있기만 하면

이미 불행한 조짐이 되고

한 번의 어김이 있기만 하면

원망과 노함이 산과 같다네

막히면 험난한 산길이 되고

맺히면 가파른 바위가 되어

천 개의 포사(褒斜)처럼 험난케 되고,

만 개의 태항산(太行山)처럼 삼엄히 되네

(…)

험함이 이와 같다 할지라도

다스리는 데엔 꾀가 있으니

평탄하고 순종하게 하려면

덕혜(德惠)를 쌓아야 할 것이며

다스려서 편안히 하게 하려면

편안히 어루만짐에 힘써야 하리니

무엇을 태평(太平)이라 이르는가?

험한 것이 평탄하게 됨이로다

무엇을 가정(嘉靖)이라 이르는가?

험한 것이 맑아지게 되는 것인데

전에 그것이 들어 있으니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려운 상황을 맞게 되니

남의 윗사람이 된 사람이여!

어찌하여 두려워 아니할쏜가?

보잘것없는 내가 지은 잠언을

대궐에다 바치노라니

나의 말 어리석다 이르지 말고

원컨대 임금 곁에 갖추옵소서

(…)

以民爲天, 天固可畏

以民喩水, 水所必戒

匪天匪水, 又一嶮巇

其險維何, 起於平地?

蚩蚩邱民, 布在都鄙

平居無事, 御之若易

一有忽之, 已兆險釁

一有拂之, 怨怒如山

阻爲崎嶇, 結爲巉巖

千褒斜難, 萬太行陰

(…)

險也如此, 平之有術

欲坦而帖, 德惠是積

欲鎭而安, 撫綏是力

何謂太平, 以碞之平

何謂嘉靖, 以碞之淸

於傳有之, 不畏入畏

爲人上者, 奈何不懼

小人攸箴, 獻于象魏

勿謂言讜, 願備丹扆

-이용휴(李用休, 1708∼1782),「민암에 대한 잠(民嵒箴)」-


[평설]

이 글의 제목은 「민암에 대한 잠(民嵒箴)」이다. 민암民嵒에서 암嵒은 험악하다는 뜻이다. 백성을 다스리기에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백성은 험악해져서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말이다. 『서경』「소고(召誥)」에도 “백성의 험악함을 돌아보아 두려워하소서顧畏于民嵒”라고 나온다. 민암이란 제목으로 글을 쓴 것은 조식(曺植)의 「민암부(民巖賦)」가 대표적으로, 그 외 작가의 것으로는 몇 편에 불과하다. 그만큼 민암의 함의가 갖는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백성을 소홀하게 대하고 거역하게 되면 백성은 산과 같은 존재가 된다. 급기야는 포사(褒斜)와 태항산(太行山)같이 험난하게 자리 잡는다. 포사는 중국 산시성(陝西省) 종남산(終南山) 골짜기 이름으로 교통의 요로(要路)이고, 태항산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로 알려져 있다.

인용문에서 생략된 부분을 보면 이러한 험함이 잠복해 있다가, 군주의 안일함에서 시작되어 군주의 게으르고 거만한 데서 완성된다. 그렇게 되면 군주의 대단한 힘과 위엄으로도 그 험함을 결코 잠재우기가 어렵다. 걸주(桀紂)도 이러한 백성의 험함을 만나서 무너져내렸다. 그렇다고 백성의 험함을 잠재울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혜환이 제시한 방법은 ‘덕혜(德惠)’와 ‘위무(慰撫)’다.

글의 말미에서는 『서경』「주관(周官)」에 나오는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不畏入畏]”라는 말을 써서 군주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 글은 마치 허균의 「호민론(豪民論)」을 읽는 것 같다. 은근한 협박조의 글이다. 「손상익하에 대한 잠[損上益下箴]」에서는 경제적인 부를 백성에게 돌리라고 설파했고, 이 글에서는 치정(治定)의 측면에서 백성을 두렵게 여겨 잘 다스리라고 말하고 있다. 두 개의 글 모두 재야(在野)의 문사가 군주에게 올리는 글치고는 상당히 수위가 높다. 백성에 대한 그의 사랑과 관심은 이 두 글만 살펴봐도 쉽게 짐작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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