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말, '-냐면'의 문법화와 정보구조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 취득 과정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최근에는 초급 문법 항목을 하나씩 배정받아 저마다 맡은 문법 내용으로 모의수업 지도안을 짜고 모의수업 영상을 촬영하여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다.
세종학당재단 '누리 세종학당' 사이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세종한국어(증보판)' 교재 제3권의 각 과에 나오는 문법 내용이 과제 대상이었고, 나는 그 중 'V/A-(으)니까, N-(이)니까'를 맡았다.
짧은 시간 이 분야에 발을 담가 보니,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수업에 쓰이는 '교사말'이라는 것이 꽤 흥미로운 주제다.
'교사말'이란 교재에 나오는 한국어 예문이나 대화문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걷다'는 동사예요"라든지 "잘 듣고 따라하세요"처럼 교사가 학습 내용을 설명하고 수업을 진행할 때 사용하는 말을 일컫는다.
초급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원어민 교사의 발화는 일반적인 한국인이 들으면 순간 '저게 한국어야?' 싶을 만큼 특이하다. 얼핏 아예 다른 언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연결어미가 거의 쓰이지 않고 '-아요/어요'로 끝나는 단문만 연달아 나온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무엇인지 몰라요'를 '무엇이에요? 몰라요'와 같이 표현하거나, '한국인이라고 말해요'를 '한국인이에요, 말해요'와 같이 표현하는 식이다. 심지어 직접인용의 '라고'마저 금지(?)되어,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해요"처럼 말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금지'나 '허용'은 좀 과한 표현일 수 있지만, 우선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실습 교육 과정에서는 그렇게 지도받는다.)
세종학당재단 '누리 세종학당' 사이트에 예비 교원으로 가입해서 '한국어교육 실습 교과목 운영을 위한 강의 참관 콘텐츠'를 수강해 보면(무료임) 누구나 초급 한국어 수업의 교사말을 직접 들어 볼 수 있다.
실제 사례로, 위 참관 과정 중 초급 1A 교실 수업 영상의 한 대목을 옮겨 적어 본다.
교사: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질문해요. 여러분 대답해요. 이거 뭐예요?"
학습자: "여행을 해요."
교사: "오, 좋아요. 여행을 해요, 여행을 하다. 여행을 해요. 선생님 '주말에 뭐 해요?' 질문해요. 여러분 '여행을 해요' 대답해요."
교사: "자, 여러분 주말에 뭐 해요?"
학습자: "여행을 해요."
이 중 "선생님 '주말에 뭐 해요?' 질문해요. 여러분 '여행을 해요' 대답해요."는 일반적인 한국어로 말하자면 대충 "선생님이 '주말에 뭐 해요?'라고 질문할 테니까, 여러분은 '여행을 해요'라고 대답하세요."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영상에서는 억양을 들을 수 있어서 의미를 파악하기가 더 수월한데, 이렇게 글로만 읽으니 더욱 낯설다.
(교사말의 특이함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아주 유익하고 재미있는 컨텐츠였다. 참관 영상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이 다들 실력이 좋으시다.)
이처럼 연결어미 없이, 관형절, 명사절, 인용절 따위의 내포문이 전혀 쓰이지 않고 단문만 병렬되는 것이 마치 중국어나 베트남어와 같은 분석어(고립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학습자가 교실에서 정식으로 배운 적 없는 문법 항목을 교사말에서 완전 제거하려고 이토록 애쓰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초급 학습자가 교사의 말을 아예 못 알아들으면 그의 한국어 학습 여정이 처음부터 너무 혼란스러워질 테니까.
또 이러한 관습은 의사소통식 교수법(CLT, 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이라는 최근의 외국어 교수법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언어학을 좋아하고 꽤 접해 보았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CLT라는 개념은 이번 한국어교원 과정을 들으면서 처음 접했는데, 대충 '문법이나 발음이 좀 틀리더라도 의사소통만 되면 장땡'이라는 접근법인 거 같았다.
(전통적인 언어학은 문법, 발음이 거의 전부인데 CLT는 그런 거야 뭐 좀 틀려도 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니 언어학 쪽 논저에서 못 본 게 당연한가 싶기도 하다. '언어학'과 '외국어 교육'이 아주 무관하지는 않으면서도 또 분명히 구분되는 분야라는 걸 새삼 느끼는 지점이다.)
(+ '전통적인 언어학은 문법 발음이 거의 전부'라고 하면 의미화용론이 배제되는 듯 느껴지는 게 좀 문제적인 말 같긴 하다. 의미론 전공하신 선생님 한 분이 '의미가 통사를 이기는' 장면을 강조하시던 게 떠오른다. 근데 그런 걸 생각하더라도 CLT가 외국인 학습자에게 취하는 포용적인 태도는 우선 원어민 지식을 일차적 대상으로 삼는 언어학하고는 여전히 다른 거 아닐지.)
"선생님 '주말에 뭐 해요?' 질문해요. 여러분 '여행을 해요' 대답해요."가 정확하거나 자연스러운 한국어는 아니지만, 어쨌든 수업 현장에서 학습자에게 교사의 의도를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의사소통 수요를 충족하는 말이니 CLT의 관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한국어 수업에 제대로 출석하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그런 케이스라면 더더욱 문법이나 발음이 틀리든 말든 우선 말이 통하는 피진(pidgin)이라도 배워 놓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교사말이 통상의 학습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외국인 학습자가 이러한 초급 단계의 교사말을 '괜찮은 한국어'로 오해하여, 중고급 단계에 진입하고 나서도 아예 인용 표지를 쓰지 않는 습관이 '화석화'되어 버린 사례를 주변에서 보았다는 제보도 있었다. (인과에 대한 해석은 이차적이지만)
그런 문제가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라고'처럼 자주 쓸 만한 표현은 극초반에 앗사리(?) 알려줘 놓고 그냥 수업에서 쭉 편하게 쓰는 게 낫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이렇게 ‘쉬운 교사말’에 집착하게 되는 데에는 한국어만으로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전제가 크게 작용하는 듯싶은데, 뭐 국내 기관에서의 한국어 수업은 다국적 학습자라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상황과 여건에 따라 학습과정 초반에는 교사가 그냥 학습자 모어를 적극 활용하면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교사말이 화석화를 초래하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외국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한국어를 가르칠 때도 그냥 외국어로 가르치는 걸 더 재미있어하는 것뿐일지도. 참고로 이번 모의수업 과제에서는 외국어 사용이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어쨌든 실습 수업 지도교수님이 안 배운 문법요소는 쓰지 말라고 아주 여러 번 귀에 못이 박히게 강조하시니, 나는 그에 최대한 충실히 따라 모의수업에서 '라고'를 거의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아니, '라고'만 안 쓴 게 아니라, 내가 맡은 단계에서 아직 안 배운 것으로 간주되는 표현은 모조리 쓰지 않았다.
관형사형 일체, '-ㄴ가요/나요', '-ㄹ 수 있다', '-ㄴ지', '-도록 하다' 등 수많은 표현을 억제한 채 거의 '-아요/어요'나 ‘-(으)세요’ 정도만을 열심히 사용하여 모의수업을 진행하였다.
그래서 그 지점에 있어서만큼은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았고, 쉬운 말만 간결하게 쓰면서도 목표 내용을 잘 전달했다는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오히려 '명령', '청유' 정도의 표현까지 피할 건 없다는 반대 방향의 피드백이 있었다. 반대 방향이라는 게 무엇의 반대 방향인고 함은 후술) (당연히 내가 막 다 잘했단 얘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다른 실습생 분들의 모의수업 교안과 영상을 보니,
나와 같은 루트로 이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사람의 대다수가 언어학, 국어학, 문법 같은 분야와 그다지 친하지 않기 때문인지,
어떤 문법 요소를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애초에 자기 발화에서 문법 요소를 따로 떼어 인식하는 것 자체를 약간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아 보였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V-기 어렵다/쉽다/힘들다/...'를 담당하신 어느 학우님이 교안에 쓰신 교사말에 '쉬운 것'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교수님은 형용사를 관형사형으로 만드는 'A-ㄴ 것'이란 게 해당 교안의 목표 학습 단계로부터 몇 과쯤 뒤에 배우는 문법이니 수업에서 '쉬운 것'이라고 말하면 학습자들이 못 알아들을 거라고 지적하셨다.(실제로 늘 그럴지 개인적으로 살짝 의심스럽긴 하지만 일단 교수님은 매우 여러 번 일관적으로 이런 입장을 견지하셨다.)
그런데 지적을 받은 학우님은 자신이 맡은 학습목표 'V-기 어렵다/쉽다' 문법에 '쉽다'가 나오는데 왜 그게 학습자에게 어려운 말이냐고 의아해하셨다.
'쉬운 것'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문법의 틀에 맞춰 말하자면 - 구문문법하고도 유사해 보여서 좀 좋아함) 어휘적 의미를 나타내는 '쉽-'이라는 부분과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ㄴ 것'이라는 부분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교수님이 지적하신 것은 앞의 '쉽-'이 아니라 뒤의 '-ㄴ 것' 부분이었는데, 추측하건대 'V-기 어렵다/쉽다'를 맡으신 학우님은 '쉬운 것'이라는 말이 '쉽-'과 '-ㄴ 것'의 두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분석적 접근에 덜 익숙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이 학우님은 '쉬운 것'에 대한 지적을 순간 '쉽다'에 대한 지적인 양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모의수업 영상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이제까지 참관해 본 대다수 학우님의 모의수업 영상에 매번 ‘학습자가 안 배운 문법이 교사말에 많이 등장한다’는 교수님의 피드백이 있었다. 좀 대담하게 말해 보자면, 이 방면으로 지적을 안 받은건 우리 분반에서는 아마 내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교사말에 쓰이는 문법 항목을 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거나 '-나요', '-도록 하다' 따위가 별도의 학습 대상이 되는 문법 요소라는 인식이 없으면, 아무래도 수업 영상 전체에서 내내 같은 현상이 계속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그래서 교수님의 피드백에서 거의 팔 할을 차지하는 것이 여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방금 간접인용문 사용하셨는데 학습자가 못 알아듣겠죠?",
"'라고'를 써서 말씀하셨어요. 학습자가 아직 안 배운 문법이죠?",
"'혼자 여행하기도 하고 같이 여행하기도 해요'라고 하셨는데, 'V-기도 하고 V-기도 하다'는 거의 5급 정도의 문법이에요. 초급 학습자한테는 너무 어려워요" 등등.
이런 내용이 계속 이어지니 저마다 열심히 준비한 연습 활동이나 PPT, 단어 카드 같은 자료가 좀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실습 수업을 같이 듣는 학우님들의 모의수업 피드백에서 지적되는 교사말의 '너무 어려운' 문법 요소는 '라고'를 위시한 ‘냐고/자고/라는/냐는/자는’ 류의 각종 인용 표지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도록 하다’, ‘-ㄴ가요/-나요’도 자주 나왔다. ‘-에 대해서/대한’도.
그 와중에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눈에 띄었다.
언어학 방의 외국어 교육 파생방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공유했다.
아래 내용은 줄이 나뉘어 있지만 여러 사람이 나눈 대화가 아니고 전부 내가 한 말이다.
- 여러 학우님들의 모의수업 영상을 다같이 보고 있습니다.
- 역시 간접인용을 안 쓰는 분을 찾기가 어렵네요.
- (모의수업 진행자가) '오늘 배울 표현은 뭐냐면은요, 이거이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장면을 되게 많이 볼 수 있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떠오르네요.
(저런 교사말은 당연히 지적 대상이다. '뭐냐면은요'는 내 생각에도 초급 학습자한텐 너무 어려운 표현이긴 한 듯.)
- 모의수업을 진행하시는 분들이 관형사형어미 '-ㄹ'이나 '-냐면' 같은 걸 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인식이 있기는 있었는데 습관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오늘 배울 표현이 뭐냐면'이라 말하게 된 거라고 가정하면,
- 그냥 '오늘은 머머를 배울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오늘 배울 표현은 뭐냐면요'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배울 내용을 제시하는 데에 먼가의 이득이 있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런 억제의지를 뚫고 나오게 된 거란 생각이 드네요.
- 정보포장이라든가.. ㅋㅋ
- 구정보를 일괄 앞으로 모으고 초점 신정보를 뒤로 빼는...
- 그러고 보니 문법화를 가르치셨던 이성하 교수님이 이런 '-냐면' 구문에 대해서 'if you ask me...' 이런 직역 제목(?)으로 논문을 하나 쓰셨다고 하셨던 거 같군요. 아니면 제자 분들이 쓰셨댔나?
- 이런 기능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을지...
-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378216613002701
- 얜가 본데 오픈액세스가 아니네요.
“I know you are not, but if you were asking me”: On emergence of discourse markers of topic presentation from hypothetical questions
- 제목이 재밌군요.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378216613002701
요컨대 '오늘 배울 내용이 뭐냐면은요, '-으니까'예요'라고 하면, '나 이제부터 오늘의 학습 내용에 대해 말할 거야, 이 뒷말을 잘 들어야 돼.'와 같이 청자에게 신정보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켜 주는, 주제 제시라는 정보구조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오늘은 '-으니까'를 배울 거예요'라고 곧장 말해 버리는 것이 학습자에게 더 쉬운(적어도 이번 모의수업 취지에 맞는) 표현임을 한편으로 알더라도, 신정보 '니까'가 너무 빨리 나오는 문장을 곧장 사용하기가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청자가 정보를 처리하기 좋게 말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밴 친절한 화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뭐냐면'을 쓰고 마는 것이다.
https://blog.naver.com/ks1127zzang/222732219272
'-냐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풀어 써 볼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럴 만큼의 여유는 아직 없기에 우선 접어 두기로 한다. 이 글 제목만 보면 요 내용이 메인인데...ㅋㅋ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2476634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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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수업 피드백 과정에서 교수님이 추천해 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사용 문법 교재 두 권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끝.
+ 문법 요소의 의미를 설명할 때 순환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잦았다. 예를 들어 '-고 있다'의 의미를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라고 설명하는 등. 그런데 이건 한국어교원 지망생 측의 문제라기보다 이렇게 추상적인 문법 개념을 초급 학습자가 알아들을 만한 쉬운 한국어만으로 설명한다는 과제 자체가 좀 이상하게 설정되어 있는 게 아닌지 하는 개인적인 의구심이 든다. 학습자 모어의 유사 구문에 대응시켜 설명하면 순식간에 끝나지 않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누리 세종학당의 수업 참관 영상에서도 '-(이)나'(OR) 표현의 의미를 그냥 중국어 '或者'로 설명해서 간결하게 끝내는 장면을 엿볼 수 있다.
++ 또 한 가지 소소하게 자랑할 만한 것은 대다수 학우님께서 교안, PPT의 띄어쓰기에 대한 지적을 한번씩 꼭 받으셨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무원시험 합격생의 당당함ㅋㅋ...
규범주의 싫어한다고 쿨한 척하면서 띄어쓰기는 또 잘만 지키는 이중성이 여기에서도 나온다.
+++ 직업적인 이유로, '교사'나 '교원'이라 하면 공무원으로서의 교사를 우선 떠올리게 되어서 한국어 원어민 선생님을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좀 낯설기도 했는데 어느새 좀 익숙해져서 나도 모르게 본문에 그런 표현을 막 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