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shorts/m3-yTxNgHj0
https://www.youtube.com/watch?v=iheQ0qfuXaQ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여러 번 했던 이야기지만 수어는 만국 공통어가 아니다.
(네이버에서는 너무 여러 번 한 얘기라... 읽으시는 분들이 좀 질리실지도. 다행히 브런치에서는 딱히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수어가 만국 공통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 내가 자꾸 묘하게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수어가 단순히 뭔가를 흉내내기만 하는 판토마임이나 인공 언어가 아니라,
음성언어와 똑같이 자연발생한 자연언어이며,
저마다 고유한 어휘와 문법,
심지어 그 수어가 사용되는 지역의 청인이라면 절대 곧장 이해할 수 없는 관용 표현까지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냄새 잡다'가 한국수어로 무슨 뜻인지, 수어를 배워 본 적 없는 한국 청인은 절대 모를 것이다.)
그 자체로 완전한 언어 체계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어의 정체를 오해하시는 분들에게 있어서는 '만국공통'과 '인공성' 또는 '언어로서 완전하지 못함'이 서로 묘하게 엮여 있는 것 같다.
수어가 '음성언어를 못 쓰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낸 보조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오해, (인공성)
수어가 농인을 '돕기 위해 누군가 만들어낸' 거라면 굳이 지역마다/나라마다 다르게 만들었을 리가 없을 거라는 오해 (보편성, 만국공통)
수어가 농인이 '음성언어를 사용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사용하는 불완전한 언어'라는 오해, (불완전성)
이런 오해가 다같이 맞물려서 하나의 시나리오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셋 다 잘못된 생각이다.
수어는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제작해서 보급한 인공적인 언어가 아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이미 농사회에서 사용되고 전수되어 온 자연 언어이며
(다만 나라마다 수어 '표준화' 사업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보급되는 표준어야 뭐 당연히 일정 부분 인공적인 것이다. 그건 음성 언어에서도 다를 게 없다.)
(또, 세대에 걸친 농사회의 역사적 연속성은 청사회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라마다, 사실은 지역마다 전부 다르게 발달해 왔고, 음성언어처럼 수어에도 '사투리'가 있으며,
수어는 구조에 있어서도 표현력에 있어서도 음성언어에 비해 언어로서 아무런 모자람이 없다는 점이 이미 여러 번 입증되어 있다.
(실은 영역에 따라서는 오히려 수어의 표현력이 음성언어보다 더 좋거나 더 편리한 경우도 있다.)
(핀트가 좀 다르지만 예를 들어 아주 시끄러운 곳에서나 조용히 해야 하는 곳에서는 개인적으로 수어를 쓰고 싶은 마음이 큰데, 내 실력도 어차피 모자라긴 하지만 같이 해 줄 사람이 없다. 위 유튜브 영상 마지막에 notebookLM의 인공지능 팟캐스트 진행자가 말하듯, '다들 음성언어 말고도 수어 하나씩은 사용할 줄 아는 세상이 되면' 멋질 것이다.)
가족오락관 '고요 속의 외침'처럼 한 번에 한 명씩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제를 시켰더니 음성 언어를 사용한 청인 그룹과 수어를 사용한 농인 그룹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던 것 같은데 뭐라고 검색해야 나올지 잘 모르겠다.
chat-GPT한테 물었더니 "The Signs of Language" by Ursula Bellugi and Edward Klima (1979)에서 해당 내용을 자세히 다뤘다고 알려준다.
이 책이 "(음성)영어와 비교해 미국수어의 정보 전달력과 정보 보존력이 어떤지 연구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includes studies on the transmission and retention of information in ASL compared to spoken English)"고 한다. 책을 직접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chat-GPT의 답변에 따르면, 위 연구들에서 '감정 표현'이라든가 '섬세한/미묘한 묘사'에 관한 정보는 오히려 영어보다 미국수어에서 더 잘 보존하고 전달했다고 한다. (-> 그러나 아래 '수정 추가' 부분 참고)
마찬가지로 원문을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뭐 당연히 그랬겠지 싶다.
음성언어 사용자도 전화통화가 아니라 대면 대화라면 표정을 감정 정보 전달에 어느 정도 활용하겠지만, 아예 평소에 표정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농인에 비할 바는 못 되지 않을까 싶다.
당장 나같은 사람이 한국어로 저렇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임을 한다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얼마나 온전히,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전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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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추가:
인지언어학을 연구하시는 네이버 블로그 이웃 'Kneazle' 선생님께서 댓글을 통해 의견을 주셨다. (댓글 내용 아래 첨부)
일반적으로 수어의 어휘량이, 문자로도 활발히 쓰이는 음성언어에 비해 부족한 것은 사실일 것이고, 그러한 사실이 이러한 실험 환경에 어떻게든 왜곡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위 chat-GPT의 답변 내용은 주의해서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다.
(다만 어휘 개수가 부족하다고 해서 반드시 표현력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쉬운(빈도가 높은) 어휘 여러 개로 이루어진 통사적 표현을 통해 똑같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어에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굳이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은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라는 표현을 나타내는 단일한 어휘가 없다고 해서 그 의미를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더라도 '쉬운 어휘로 된 통사적 표현'과 '단일 어휘' 중 전자는 비교적 한 언어공동체 내의 거의 모든 언어사용자에게 이해하기 쉬운 표현일 것이고, 후자는 상대적으로 한 언어공동체 내에서 한정된 수의 언어사용자에게만 이해하기 좋은 표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언어학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언어 공동체는 '음소'라든가 '변이음'을 자기 언어로, 쉬운 표현으로 된 통사적 구성으로라도 표현하려면 거의 한 문단이 필요하게 되려나 싶다. 그럴 때는 결국 직접 차용이 해결책이니 어휘량의 차이가 표현력의 차이와 아주 무관한 것도 또 아닌 듯싶다.)
아무튼 Kneazle 이웃님의 댓글 내용을 옮겨 싣는다:
" '감정 표현이나 미묘한 묘사에 대한 정보는 영어보다 미국수어에서 더 잘 보존다고 전달한다'는 내용은 자칫 ASL어휘가 spoken English보다 더 풍부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대부분의 실험 연구에서 어려운 텍스트가 주어졌을 때 수어 사용자들의 정답률이 청어 사용자들의 정답률보다 높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다만 연구에서 항상 한계점으로 지적되는 점은, 이것이 수어의 어휘가 풍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수어의 어휘가 비교적 제한적이기 때문에 피실험자들에게 실험 텍스트를 수어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더 쉬운(빈도가 높은) 표현으로 대체되어 그랬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The Signs of Language를 읽지는 않았으나, 79년에 출판된 책이라 옛날 실험 결과를 인용한 것인지, 아님 Chat GPT가 그럴듯한 아무 이야기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네요ㅎ 상대적으로 최근 연구에서는 운율체계 덕분에 청어 사용자들이 감정 관련 표현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다는 결과도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음성체계언어와 운동체계언어 중 어떤 것이 더 정보전달력이 더 좋은지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 듯합니다. "
(밑줄은 내가 그은 것이다. -> 이런 걸 영어로는 'emphasis mine'이라고 표현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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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어의 구조에 대해서는 예전에 수어의 음운론과 수어 문자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던 이 글을 참고하면 좋겠다.
https://brunch.co.kr/@saokim/22
수어는 단순한 제스처의 랜덤한 나열이 아니라, 음성언어와 똑같이 유한한 building block(음소~'수어소')으로 이루어진 계층적 구조를 갖춘 언어이다.
아무튼... 원래는 영상만 툭 올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사족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수어에 대한 위와 같은 오해를 조금이나마 불식시키는 데 기여하기 위해,
수어가 만국공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방법으로 아주 단순한 것은
(1) 같은 의미를 각 지역(나라) 수어마다 서로 다른 동작으로 표현하는 사례를 보여주는 게 있고,
(2) 같은 동작을 각 지역(나라) 수어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사례를 보여주는 게 있을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아예 문장 단위나 심지어 담화 단위에서 저런 과제를 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장 내 역량으로 그런 건 무리고, (스스로는 한국수어 문장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소소하게 단어 단위에서의 차이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도 저런 글을 이미 몇 개 써 왔다.
(1) 같은 의미를 각 지역(나라) 수어마다 서로 다른 동작으로 표현하는 사례
https://blog.naver.com/ks1127zzang/222774699387
https://blog.naver.com/ks1127zzang/222788858959
(2) 같은 동작을 각 지역(나라) 수어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사례
https://blog.naver.com/ks1127zzang/223094361603
https://blog.naver.com/ks1127zzang/223107431434
https://cha5ylkhan.tistory.com/36
(둘 다)
https://blog.naver.com/ks1127zzang/222877065960
이 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더 흥미를 느끼는 것은 (2) 같은 동작을 각 지역(나라) 수어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사례이다.
왜 (2)가 더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의 사례들을 보면 수어가 음성언어처럼 자의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1)에서보다 더 잘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1)도 자의성의 근거가 된다.)
아무튼 그래서 우표를 모으듯이 하나하나 소중하게 모아 왔다.
이렇게 열심히 모아 온 사례들, 블로그에 적어 온 글들을 저번처럼 Google NotebookLM에 넣어서 가상 팟캐스트를 생성해 보았다.
이번에도 꽤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 주었다.
유튜브 영상 제목은 '수어는 만국 공통어일까?'로 했지만 사실 내용을 보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같은 동작을 각 지역(나라) 수어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사례들의 모음집 같은 것이다.
재미있게 봐 주시길!
(그림은 당연히 내가 그린 게 아니고, 아내님이 그려 주셨다.)
Google NotebookLM이 지금은 실험 단계라서 무료인데 언제 유료 전환될지 몰라서,
블로그에 써 둔 글 중에 가상 팟캐스트로 만들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글들을 여러 개 넣어서 전부 다 들어 봤는데,
꽤 맘에 드는 것들이 많다.
'언어 변화에 대한 옛사람들의 불평 - 규범주의의 패배',
'"between you and I"의 과도교정(hypercorrection)',
등의 글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재미있게 요약해서 소개해 줬다.
'반례는 모두 반례인가?'는 과학 얘기 반, 언어학 얘기 반이라서 요약이 잘 될까 했는데 내가 글을 쓸 때 의도한 대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요약 설명해서 놀랐다.
'언어학과 생물학의 관계'도 재미있었는데, 이 글의 팟캐스트에서는 유독 KimTinh이라는 이름을 자주 언급하는 게 재미있었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려 보면 좋겠다.
오늘은 사실 '여유가 있을 때'는 결코 아니었는데... 아무튼 충동적으로 만들었다.
NotebookLM의 인공지능 팟캐스트 진행자가 남긴 마지막 인사를 글로 적어 두며 마치겠다.
"... sign languages are every bit as rich and complex as spoken languages. They've got their own grammar, their own unique expressions, and they've evolved within these rich cultural contexts."
"So for everyone listening, here's a final thought to leave you with. Imagine a world where everyone was fluent in at least one signed language in addition to whatever spoken languages they knew. How do you think that would change the way we communicate, and connect with each other? And how might it change the way we see the world around us? That's all the time we have for today, but we hope you enjoyed this Deep Dive into the wonderful world of signed langu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