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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녀 Feb 08. 2021

가르치기 힘든 아이

작년부터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조금씩 하고 있다. 아직 많은 학생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학생 중에 가르치기 힘든 아이가 한 명 있다. 이름은 일단 '연주'라고 하자. 발음하기 예쁘고, 요즘 드물지 않은 이름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연주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을 하셔서 내가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면 연주 혼자 있을 때가 많다. 내내 혼자 있는 것은 아니고 학교 돌봄 교실이나 영어 학원 등에 있다가 내 수업 시간에 맞춰 집으로 와 있는 것 같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까맣고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를 한, 트와이스와 어몽 어스(모바일 게임)를 좋아한다는 귀여운 소녀다.

연주는 공부를 싫어하는 타입이다. 그럼 공부를 좋아하는 초등학생이 있다는 말이냐, 고 되물을 수 있겠는데, 음... 연주는 공부를 아주아주 매우 싫어하는 타입이다,라고 일단 말해 볼 수 있겠다.  

연주가 가르치기 힘든 까닭은 배우려는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영혼 없이 몸만 와 있는 학생이 바로 연주다. 듣지 않는 사람을 향해  떠드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한참 수업을 하다가도 연주가 안 듣고 있다는 걸 눈치채는 순간, 맥이 쭉 빠지면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목소리도 이상하게 갈라진다. 

연주는 수업에 도통 관심이 없다. 수업 시간에 연필 떨어뜨리기, 지우개 뜯기는 기본이고 머리카락 빙글빙글 말기, 입 뻐끔거리기 등을 하면서 산만하기가 이를 데 없다. 지난 시간에는 연필 뒷부분을 깨물어 나무 부분이 세로로 쩍 쪼개지기까지 했다. 

내가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을 타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아무 얘기를 그림까지 그려가며 느릿느릿 길게 한다. 쓰기를 시키면, 몸을 책상에 반쯤 엎드린 채 꾸역꾸역 쓰는데 매 줄마다 이모티콘이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써 놓은 글은, 음.... 몇 줄 되지 않음에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보자고 해야 할지, 전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연주에게 주의를 주기도 하고 다짐을 받아내기도 하지만, 실은 나에게 확신이 없다. 꼭 연주가 이 수업을 열심히 해야만 할까. 꼭 그래야만 할까.  

물론 교육은 중요하다.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지금과 앞으로의 입시에서 논리적인 글쓰기, 개성적인 글쓰기는 좋은 평가를 받는데 꼭 필요하다. 꼭 입시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글쓰기는 그 직업을 더 빛내주거나 확장시킬 수 있는 큰 장점을 가진 기술이다. 

그러나 원하지도 않은 과도한 교육은, 교육이란 이름의 감옥 같은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아이의 몸과 마음을 가두어 놓는 것. 그렇게 받은 가르침이란 어차피 아이의 머릿속에서 소화되기는커녕 그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모두가 글쓰기를 잘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연주를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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