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의 부재 열한 번째 <시간 없음>
Memento mori
: 시간 없는 시대의 우리에게,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미니스커트를 입고,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처럼 거리를 걷는다.
데이트 장소에 도착하자, 공유 닮은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흔든다. 심장이 작은 불꽃놀이처럼 튀고, 어깨는 저도 모르게 리듬을 탄다.
한쪽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반대 손으론 핸드백을 움켜쥔다. 배에 은근히 힘을 주고, 5센티 굽이 못내 아쉬워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다.
그 순간— 뭔가에 걸리고, 스텝이 꼬이고,
그대로 발라당.
찰나의 정적. 이 순간, 시간은 멈춘다.
시간의 흐름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상대성 이론은 말한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에겐 지금이 현재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과거 혹은 미래일 수 있다.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한, 우리는 언제나 ‘지금’에 갇혀 있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흐르는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배웠다. 시간은 흐르고, 그 흐름 속에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하지만 어쩌면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래 지속된 시간이 아니라 단 하나의 ‘강렬한 감각’일지도 모른다. 넘어진 1초가, 평생을 따라오는 순간처럼. 그러고 보면, 시간을 만든 것도, 그걸 느끼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옛날, 엄마가 막걸리 빵을 만들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빵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그 시간 동안 엄마 옆에 맴돌던 기억.
겨울밤, 아버지가 난로 위에 밤과 고구마를 올려놓고 구워주던 기억. 그 고소한 냄새가 방안 가득 퍼지면, 우리는 그 향기만으로도 배부른 듯했다.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친구에게 손편지를 쓰던 여고 시절. 답장을 기다리던 그 긴 시간마저 관계의 시간, 감정의 시간, 인간의 시간이었다.
아들 어린이집 소풍 날,
새벽같이 일어나 선생님들 몫까지 정성껏 김밥을 싸던 기억. 그때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고, 나는 그 무게 속에서 더 깊이 살아 있었다.
사랑도, 우정도, 신뢰도 모두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 시간을 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깊게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편리하고 빠른 삶은 덜 아픈 삶일지는 몰라도, 덜 살아 있는 삶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실 ‘시간이 없다’며 살아 있는 감각을 잃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느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삶. 시간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진짜 삶을 생략해온 건 아닐까.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결국 지금을 살아내라는 뜻이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썸 타는 남자 앞에서 넘어진 여자의 1초는 — 억겁.
하지만 결국 일어난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걸어간다.
시간은 다시 흐른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순간이 평생을 따라올 거라는 사실.
남자에 대한 여자의 호감이 클수록,
이미 제정신 아닌 여자가
그 다음 순간 커피를 쏟을 확률 90%.
물 한 모금 마시다 사래 들릴 확률은 100%.
시간은, 그렇게 우리를 넘어뜨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며 살아 있음의 증거를 남긴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보다 한 발 앞서 달린다.
고대엔 태양과 별의 걸음을 따라 낮과 밤을 나눴다.
행성의 떨림은 시차를 만들었고, 우리는 흔들리는 진자의 호흡으로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더 정밀한 광격자 시계로까지 나아가며 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해졌지만—
나이 먹는 일은
그 시간으로부터 더 잔인한 선고를 받는 것과 같다.
시간이 정확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사라지는 중이다.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다. 그러나, 여유롭게
'살아있는 감각'을 느끼기엔, 오늘 하루가 바위처럼 무겁고, 형벌을 감내하는 시간처럼 더디기만 하다.
누군가는 그 무게를 한 잔의 술로 겨우 견딘다.
죽기 전,
왜 더 즐겁게 못 살았을까, 가슴을 치며 후회하겠지.
그래서 이렇게 기록한다.
도저히 즐거울 수 없는 시간, 괴로움과 고독,
해방되지 못한 민생고,
그리고 지긋지긋한 일상의 반복을.
때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건—
우리가 이미
하루하루를 죽음처럼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