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점의 인간학 - 먼저 시리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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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피엔




존재의 잔혹한 통증.

이 세계에서 멸종하기 쉬운 방식으로 사는 인간은

미세하게 스치는 바람에도 뼈가 시리다.



대부분의 사람은 바람을 날씨로만 느끼지만,

어떤 인간에게 바람은 곧 생존의 기압이다.

조직의 온도 변화, 타인의 말투 하나,

단톡에 뜬 사소한 한 줄, 복도에서 스친 눈빛 -

그 모든 것이 기압골처럼 몰려와

몸의 안쪽을 먼저 얼린다.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

사유가 멈추지 않는 사람,

내면의 진동이 표정으로 새어 나오는 사람.

이들은 조직의 기후에서 가장 먼저 결빙되고

가장 쉽게 금이 간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예민함이 아니다.

세계의 냉기는 구조적으로 특정한 인간형을

먼저 해치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춥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채는 사람,

바람의 결을 먼저 감지하는 사람만

더 빨리 시리고 더 빨리 파인다.



며칠 전, 누군가 내게 물었다.

“스트레스 잘 받죠?”



그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이 세계가 내게 내린 판정이었다.



너는 이 구조에 부적합하다.

너는 이 기압을 견딜 타입이 아니다.

너는 금이 갈 사람이다.



둔감함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기술을

끝내 배우지 못한 몸,

제도의 압력을 견딜 만큼

무디어지지 못한 마음.



그리고 조직은

이런 인간에게 점수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늘 같은 방식으로 되묻는다.



왜 그렇게 느끼는가.

왜 그렇게 예민한가.

왜 조금 더 둔해지지 않는가.



이 질문들이 쌓일 때,

감각은 결함이 되고

사유는 약점이 되며

존재는 서서히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밀려난다.



이 연재는,

그렇게 먼저 시려진 인간들이

왜 늘 같은 자리에서 금이 가고,

왜 이 세계는 그 금을

마치 자연스러운 소모처럼 받아들이는지-

그 잔혹한 구조를 기록하려는 시도다.






< 먼저 시리는 존재를 위하여 >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줄곧 한 가지 생각에 머물렀다. ‘세계의 냉기는 왜 언제나 같은 사람에게 먼저 닿는가?’



예민함은 결함이 아니고, 감각은 장애가 아니며,

남들보다 먼저 시리는 몸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다. 그건 세계가 구조적으로 품은 기압이고,

누군가는 그 기압을 더 빨리, 더 깊이 느끼도록 태어나거나 자라났을 뿐이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 기록이, 바람의 흐름을 먼저 알아채는 인간에게 그게 약점만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싶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깨지고, 다르게 버티고,

다르게 통증을 견디며 살아간다.



<0점의 인간학>은

그 ‘다르게’의 온도와 무늬를 기록하려는 작은 시도다. 이 세계의 냉기 속에서 먼저 시린 사람에게

적어도 하나의 언어가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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