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들키지 않기 위한 시선
“향기팩 추후에 또 쌓아둔 객실 확인되면
어느 주임님인지 확인하겠습니다.”
그래서 뱁새의 눈이 탄생한다.
사람들이 비열해져서가 아니다.
비열해 보이는 선택만이 안전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지시가 아니다.
경고이고, 예고이며, 감시의 선언이다.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누군가는 보고 있고, 언젠가는 특정될 것이라는 공기다.
이 순간부터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사람을 본다.
쌓아둔 향기팩보다 먼저
서로의 손, 눈, 동선부터 훑기 시작한다.
조직은 이렇게 책임을 분산시킨다.
문제는 개인의 실수가 되고,
불안은 모두의 몫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똑바로 보지 않는다.
앞이 아니라 아래를,
옆을,
뒤를 본다.
멀리 보는 눈 대신
작은 틈을 찾는 눈,
먼저 들키지 않기 위한 눈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뱁새의 눈이다.
멀리는 보지 못하지만
서열과 위험에는 유난히 민감한 눈.
이 눈을 가진 인간은
굳이 악해질 필요가 없다.
그저
먼저 발견하고,
먼저 말하고,
먼저 빠져나오면 된다.
이 세계가 요구하는 것은
선함도, 성실함도 아니다.
먼저 시리지 않는 둔감함,
그리고
잽싸게 보는 눈이다.
눈치 백단의 뱁새 눈.
이 장면이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곳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사무실이든, 학교든, 병원이든, 회사든
점수와 평가, 기록과 추적이 작동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같은 눈이 태어난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보다
문제를 먼저 발견해 표시하는 사람이
더 안전해지는 순간,
조직은 반드시
뱁새의 눈을 양산한다.
그래서 이 세계의 야만은
특정 직종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와 생존이 결합된 모든 구조의 기본값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비열한 인간이 늘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늘어난 것은 인간의 악의가 아니라
비열해 보이는 선택만이 살아남는 '환경'이다.
이 세계는 오늘도
멀리 보는 눈을 깎아내고,
잽싸게 훑는 눈을 보상한다.
그리고 그 눈들이 많아질수록
조용히 일을 끝내는 인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