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능이 아니라
사실은 울고 싶었다.
(소리 지르며 뛰고도 싶었다.)
대신, 퇴근길에 술을 샀다.
이 밤의 원인은 단순하다.
어제는 딸 뻘인 선임 동료에게 깨졌고,
오늘은 지배인 앞에서 엉망인 엑셀 작업을 들켰기 때문이다.
“검토해 주세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막상 검토자 옆에선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표는 어설펐고,
정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는 돌대가리다.
지배인은 별다른 표정 없이
한 칸, 한 칸 짚어가며 설명했다.
이상하리만치 잘 이해됐다.
구조가 보였고, 흐름이 읽혔다.
‘아, 이런 거였구나.’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이 쉬운 걸 왜 틀렸지?
대체 나는 뭘 한 거지?
엉망이었던 잠깐의 수행.
그 간극이
곧바로 지능 의심으로 이어졌다.
혹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예전에 속으로 “돌대가리”라 분류했던 학생들처럼,
사실 나도 그 칸에 들어가는 건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그 아이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 칸은 포기의 칸이 아니라
아직 구조가 잡히지 않았을 뿐인 칸이었다.
시간이 필요하고, 틀이 생기면 달라질 아이들이었다. (아직 뇌가 트이지 않은.)
그렇다면
오늘 내가 나를 그 칸에 넣은 건
파괴가 아니라 가능성의 칸에 넣은 걸지도 모른다.
핵심은 이것이었다.
지능이 아니라, 스키마.
스키마는 머릿속의 틀이다.
정보를 정리하는 구조.
문제를 볼 때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알려주는 지도 같은 것.
국어에서는 그 지도가 이미 완성돼 있다.
작품을 보면 갈래가 보이고,
화자의 태도, 주제, 표현법이 자동으로 보이고,
질문을 보면 출제 의도가 읽힌다.
그건 내가 타고나서가 아니라
수년간 쌓인 스키마가 자동화되었기 때문이다.
엑셀은 달랐다.
아직 지도도 없고, 길 이름도 모른다.
설명을 들으면 이해는 되지만
손은 아직 길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상태를
나는 지능 문제라고 오해했다. (오해였음 좋겠다)
하지만 지능이 부족하다면
설명을 들어도 구조가 잡히지 않는다.
“아.” 하는 순간의 그 자체가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해했다.
단지 자동화가 안 되어 있었을 뿐이다.
지능이 문제가 아니라
"형성" 이 새롭게 시작되는 구간.
경력 많은 사람이 새로운 분야에 들어가면
초반에 더 멍청해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 영역에서는 자동화된 사람이기 때문에
초기 시행착오를 더 크게 체감한다.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인데’라는 자의식이
실수를 과장해서 해석한다.
오늘은 실패의 날이 아니라
스키마가 처음 연결된 날이었다.
돌대가리가 아니라,
스키마 형성 중.
소주 한 잔을 들이켜며
겨우 끄집어낸 생각이
하루 종일 쪼글아들어 있던 심장을
가까스로 펴주었다.
이해는 공포를 이긴다.
구조는 자책을 줄인다.
나는 멍청해진 게 아니라
낯선 체계를 배우는 중이다.
길을 모른 채 서 있던 것이지
길을 이해 못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오늘은 무능의 증명이 아니라
지도의 첫 선을 그은 날이다.
형성 중인 것은
어설퍼 보인다.
느려 보인다.
때로는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형성 중이라는 건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은 서툴지만
언젠가 자동으로 손이 움직일 것이다.
구조가 먼저 보이고
실수는 줄어들 것이다.
나는 무너진 게 아니라
확장 중이다.
오늘의 취기는 패배의 잔이 아니라
새로운 스키마의 건배다.
지금은
단지
스키마 형성 중일 뿐이다.
형성 중인 것은
언젠가 자동화된다.
(끝내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