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인의 기록 2일 차 <그날의 기억>
그날, 베란다 화분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노크 소리에 놀랐다. 누가 찾아올 리 없는 이른 아침. 벨을 누른 것도 아니고 나지막하게 두드리는 소리.
"나야"
지난밤 친구 집에서 잔다고 문자를 보내왔던 아들이었다.
실컷 놀다 밤이 늦어서야 들어올 거라 생각했던 녀석의 아침 귀가는 예상 밖인 데다, 등 뒤로 뭔가를 감추고 있는 폼이 수상쩍었다. 평소처럼 무심히 넘겨지지 않는 어미의 본능적 직감.
녀석이 어쩔 수 없이 약봉지를 내밀며 마스크를 벗었는데, 하마터면 동공이 폭발할 뻔했다.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괴성이 터졌다. 내 눈은 잠시 충격으로 멀었던 걸까?
밤늦게 킥보드 타다가 넘어져서 다쳤다는 소리가 귓등을 스치고도 한참 후에야 녀석의 상태가 시야에 확보됐다.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괴기스럽게 부어있는 아들의 얼굴은 지상 위에서 처음 보는 생명체 같았다.
여러 바늘 꿰맨 안쪽 아랫입술은 퉁퉁 부어 발음이 어눌했고 거즈를 입힌 턱도 상당히 부자연스럽단 사실을 더디게 더디게 알아챘다.
새벽에 다쳤고 몇 시간을 방치하다 아침 7시에 응급실을 찾았다는 사건의 전말도 힘들게 캐내어 그나마 알아냈다.
이노무시키는 어릴 적엔 질병으로 고생이더니 커가면서 유난히 사건사고를 달고 다니는지, 벌써 몇 번 째인가.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다 손가락 관절뼈가 으깨졌던 몇 달 전, 데려갔던 병원에서 아들놈의 1년 전 오토바이 사고 이력까지 우연히 듣게 된 엄마는 아마 드물 것이다. 자전거를 타다 자동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있던 때도 엄마에겐 한사코 비빌로 했던 녀석이다. 뭐가 잘못됐을까.
생각해 보면 지난날, 잔병치레 많았던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한 번도 의연하지 못했다.
혼자인 나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내 삶의 무게를 고통스럽게 인식했고 그럴 때마다 엄마의 슬픔은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을 것이다.
강인하지 못한 엄마에게 걱정 끼치는 게 싫어, 자라는 동안 혼자 몰래 앓거나 병원에 다녔을 내 아들.
“부모란, 아이가 울기 전부터 가슴이 아픈 사람이다.”란 말이 있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 반대였을지 모른다.
뒤늦은 참회가 심장을 후벼 파고 뼈에 사무쳐 나는 또 그날 하루 제정신이 아니었다.
물 마시기도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 한솥 가득 죽을 끓였는데 먹어보니 맛이 없고, 병원에 데려가 재치료와 CT촬영을 마친 후엔 지갑이 없어서 멘붕에 빠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와중에도 녀석의 연애질은 달달하게 진행 중이란 사실이었다.
엄마는 넘치는 죽솥단지 앞에서 피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이 시키는 한 숟가락도 안 먹고 여친 만나러 달려갔다. 여친이 많이 걱정하고 힘들어 한다나......
그날 그 맛없는 죽은 내가 다 먹어치웠다. 명치가 답답하고 소화가 안됐다.
사랑때문일까.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족하게 느껴졌던 건. 끝도 없이 미안하고 아픈 건.
부모란,
이토록 격렬한 감정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이건만,세상 모든 부모의 사랑은 그럼에도 늘 모자라다. 한없이 주고도 더 주지못해 미안하거나 줄 게 없어 미안하고 또 미안하거나.
그래서일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지금도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