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세상, 별일 없음

12개의 부재 첫 번째 <사건 없음>

by 사피엔




나는 지루함 속에 죽었다.
그 어떤 불행도 없었다.
오직, 아무 일도 없었을 뿐이다.
- 기 드 모파상, <자살들> 중 -







18세기 베르사유 - 화려함 속 방 하나 없음


18세기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황금빛 실로 장식된 커튼, 정교한 조각으로 뒤덮인 천장,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에서 향수가 흐르고 음악이 울렸다. 하지만 정작,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망을 해결할 '방' 하나는 없었다. 귀족들은 숲으로 나갔고, 종종 커튼 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화려한 과잉은, 어떤 결핍도 가릴 수 없었다.




20세기 초 미국의 ‘꿈의 주택’ – 위생 없는 번영


20세기 초, 미국은 ‘모든 가족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주택의 이상을 실현해갔다. 전기와 수도, 자동차와 냉장고가 보급되며 문명의 안락함은 곧 삶의 질이라는 신념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많은 주택이 여전히 실내 화장실조차 갖추지 못한 채, 외양만 현대화되었다.

사람들은 욕실 없는 욕망 속에서 살았고,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삶은 여전히 원초적 불편과 함께 있었다.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1936) – 진실 없는 쇼


1936년, 나치 독일은 베를린 올림픽을 ‘평화와 스포츠의 축제’로 포장했다. 거대한 스타디움, 정교한 연출, 완벽한 질서 아래

독일은 문명과 미의 국가로 연출되었지만, 그 무대 뒤편에서는 유대인과 소수자에 대한 말살 정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진실은 장식된 스피커 아래 눌려 있었고, 우리는 화려한 경기 중계에 열광하며, 그 침묵에 공모했다.








전후 일본의 백화점 – 행복 없는 소비


1950년대, 전후 일본의 경제는 급속히 회복되었고 도쿄의 백화점들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근대의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화장실 갈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화려한 진열장 뒤에서 무표정한 미소를 유지해야 했다. 외형은 풍요로웠고 도시엔 네온이 가득했지만, 그 빛은 개인의 감정과 존엄을 비추지 못했다.




소련의 붉은 광장 – 자유 없는 질서


모스크바 붉은 광장은 항상 ‘위대한 인민의 힘’을 상징하는 장소로 그려졌다.

규율과 행렬, 군사 퍼레이드와 구호는 모든 개인이 하나의 ‘국가적 목소리’에 편입되었다는 환상을 완성했다.

하지만 정작 그 목소리 속엔 단 한 명의 자유로운 말투도 허락되지 않았다. 질서는 있었지만 자유는 없었고, 강력한 국가는 존재했지만, 개별의 존재는 지워졌다.




디즈니랜드 개장 (1955년) – 환상 속 감정 없음


1955년, 디즈니랜드는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문을 열었다. 그곳은 현실의 고통을 지운 채, 환상의 질서와 즐거움만을 선택적으로 재현했다. 퍼레이드와 캐릭터는 항상 웃고 있었고, 방문객들은 스크립트 없는 감정을 기획된 감정으로 교환해야 했다.

모든 것이 잘 작동하는 세계, 하지만 그 안에는 슬픔도, 우울도, 아무 말도 없는 사람이 설 자리는 없었다.







오늘 우리 일상도 다르지 않다. 세상은 '사건'으로 넘쳐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매일 아무 일도 없이 하루를 마친다. 누군가는 그 평온을 축복이라 부르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반복을 견디다 서서히 꺼진다.

모파상이 말한 것처럼, "그 어떤 불행도 없고, 단지 아무 일도 없어서"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별난 세상에 살고 있다. 모든 게 즉시 연결되고, 온 세상의 소식이 알림으로 밀려드는 시대. 누군가는 세계적 스타가 되었고, 누군가는 죽었다. 어떤 커플은 헤어졌고, 어떤 작가는 상을 받았다. 세상은 여전히 '사건'으로 분주한데, 정작 우리의 하루엔 별일이 없다.


지루하지 않은데도, 지루하다.

무언가가 결핍된 것도 아닌데, 텅 비어 있다. 이 이상한 상태는 대체 뭘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그저 '오늘도 무사히'라는 인사 뒤로 감춰진 공허.


그리고 그 공허는, 어느 날 우리를 그냥 조용히 무너뜨린다. 모파상의 남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의 고백은 우리의 오늘과 정확히 겹친다.


그 어떤 불행도 없었다.
단지,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는 '사건 없는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사건을 소비한다.

뉴스를 켜고, 타인의 일상을 스크롤한다. 남의 결혼식, 남의 실직, 남의 고백과 고소. 남의 인생에서 터지는 일들을 보며 우리의 '무사한'하루에 의미를 덧입힌다.


하지만 그건 우리 일이 아니다. 구경일뿐이다.

정작 내 일상은,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 것, 택배 도착 알림을 확인하는 것, 말 건넬 사람 하나 없이 조용히 흐르는 하루의 끝자락을 지켜보는 것,


사건 없이도 살아남지만, 사건 없이 오래 버티는 건 또 다른 고통이다.

그 고통은 격렬하지 않다. 그저 묘하게 기운 빠지고, 밥맛이 없고, 대화가 줄고, 몸의 질병이 오래간다.


아무 일도 없는 날들.

이 조용한 침식 앞에서, 우리는 무너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사는게 좀 지루해" 혹은 "요즘 그냥... 지쳐"라고 말할 뿐이다.


지루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사자는 사냥이 없으면 잠을 자고, 고양이는 하루를 그대로 늘어뜨린 채 보낸다. 하지만 인간은 '무의미'를 견딜 수 없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의미'를 요구하고, 그게 없으면 스스로를 의심한다.


'왜 나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내 삶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지'

'나는 무언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이 불안이, 오히려 사건보다 더 깊이 우리를 파고든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는 날은 가장 복잡한 감정을 남긴 채 하루를 마감한다.


별난 세상에서, 별일 없는 우리는 어쩌면 지금,
가장 치열하게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건 없음.

별난 세상, 별일 없음.

이 글은 딱히 주제 없음. 맥락 없음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존재하지 않았던 날을 기억한다.그것은 잊혀진 게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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