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rophage는 정말 생명체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자꾸 생각이 남는 존재가 있었다. 주인공도 아니고, 외계 친구 Rocky도 아니었다. Astrophage.
나는 미생물학, 분자생물학, 생물공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서사에 몰입하면서도,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계속 다른 질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저 에너지를 저장하지?
극한 환경을 버티면서 구조는 어떻게 유지하지?
유전정보는 어떻게 망가지지 않고 버틸까?
그리고 무엇보다, 저 존재는 정말 생물학의 언어로 설명 가능한 대상일까?
현실의 생명은 놀랍다.
강산성에서 사는 미생물, 고온에서 사는 미생물 그리고 방사선에 강한 미생물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유연하다.
하지만 현실의 생명에는 공통점이 있다. 강한 능력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극한 내성을 가지면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오래 버티는 능력을 가지면 번식 효율이 떨어진다.
생물학은 늘 trade-off, 맞바꿈의 과학이다.
그런데 Astrophage는 그 맞바꿈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에너지를 모으고, 저장하고, 극한 환경을 버티고, 오랜 시간 이동하고, 다시 활성화되어 증식하고, 마침내 별의 에너지 흐름에까지 영향을 준다.
이쯤 되면 대단한 미생물이라기보다, 자기 복제 가능한 초고성능 에너지 장치에 가깝다.
"빛을 먹는 외계 생명체."
Astrophage를 한 줄로 요약하면 대개 이렇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 설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빛을 이용한다는 데 있지 않다. 미생물 중에도 빛으로 에너지를 얻는 존재들은 실제로 있다. Proteorhodopsin이라는 단백질을 가진 해양 세균들이 대표적이다. 빛 에너지로 막전위를 형성하고, 그것으로 ATP를 만든다. 그러니 "광에너지를 쓴다"는 발상 자체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렇게 얻은 에너지를 어떻게 저장하느냐.
현실의 생명체는 에너지를 아주 제한된 방식으로 저장한다. ATP, 지방, 글리코겐 같은 형태로 조금씩 나누어 관리한다. 세포는 정교한 화학 시스템이지, 고밀도 연료 탱크가 아니다.
에너지가 너무 커지면 그만큼 구조 불안정성, 열 손상, 자기 파괴 위험도 커진다.
현실의 세포는 그런 위험을 감당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Astrophage의 가장 큰 비현실성은 외계 생명체라서가 아니다.
생명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에너지를 너무 안정적으로 다룬다는 데 있다.
이 순간 Astrophage는 미생물이라기보다 생명체의 형태를 한 배터리처럼 보인다.
생명은 에너지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정보도 필요하다.
우리가 아는 생명은 DNA나 RNA 위에 그 정보를 올려놓는다. 그런데 이 분자들은 생각보다 섬세하다. 열에도, 방사선에도, 산화 스트레스에도 손상된다.
현실에 손상에 강한 미생물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손상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손상되어도 복구를 잘하는" 존재에 가깝다. 이 차이는 꽤 크다.
Astrophage처럼 극한 환경을 버티고, 장거리 이동을 견디고, 다시 활성화되어 증식하려면 단순히 DNA가 튼튼하다는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전혀 새로운 정보 저장 방식이 필요하거나, 엄청난 수준의 중복 저장과 복구 체계가 있어야 한다.
영화는 당연히 여기까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는 동안에는 넘어갈 수 있지만, 생물학을 배운 사람은 결국 이 질문에서 멈추게 된다.
저 존재는 자기 정보를 대체 어떻게 보존하는 걸까.
흥미롭게도, Astrophage에서 내게 가장 크게 걸리는 건 분자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생태학이었다.
어떤 생명체든 life cycle이 있어야 한다.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자라고, 언제 휴면하고, 어떻게 퍼지고, 무엇과 경쟁하고, 어떻게 죽어가는지. 생명은 하나의 기능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관계 안에서 성립한다.
현실의 생명체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생태계 안에서 제한되고, 경쟁하고, 실패한다. 그 모자람 덕분에 더 생물답다.
그런데 Astrophage는 너무 완성형이다. 에너지 저장, 극한 내성, 이동, 증식, 거대한 영향력. 그것을 제어하는 진화적 비용이나 생태적 제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에서 Astrophage가 생명체의 결과라기보다, 이야기의 필요가 만든 완성품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나는 Astrophage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아마 이 존재가 생명에 대한 질문을 아주 강하게 밀어붙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이란 어디까지를 말하는가. 에너지를 다룬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극한 적응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진화는 왜 그렇게 쉽게 만능을 허락하지 않는가.
좋은 SF는 꼭 정확해서 오래 남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지 않은 틈 때문에 더 많은 질문을 남기기도 한다.
내 결론은 단순하다.
Astrophage는 정교한 외계 미생물이라기보다 생명체의 옷을 입은 서사적 장치다.
그것은 생명체처럼 행동하고, 연구되고, 이야기의 중심을 끌고 간다. 하지만 실제 미생물학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많은 제약을 너무 가볍게 넘어선다.
그렇다고 이 설정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Astrophage는 나로 하여금 생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생명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아주 낯선 방식으로 다시 꺼내 들게 했다.
Astrophage는 미생물이 아니다. 미생물의 언어를 빌려온, 아주 영리한 상상이다.
그리고 아마, 좋은 SF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맞아서가 아니라, 완벽하게 믿을 수는 없는데도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서 오래 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