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늦둥이 조카의 권력

주는 사랑만으로 충만한

by 지혜로운 사자

나의 막냇동생과 올케는 동갑내기이다. 늦은 결혼으로 둘 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어렵게 귀한 아이를 낳았다. 이제 조카는 한국나이로 다섯 살이고 말을 제법 잘하기 시작했다. 나의 아들과는 스무 살이 넘게 차이가 나서 남들이 보면 사촌지간이 아니라 젊은 아빠와 아들, 혹은 삼촌과 조카 정도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친정에서는 내가 맏딸이었고 바로 아래 여동생은 미혼이어서 우리 아이들의 출생 이후 거의 20년 만에 태어난 나의 조카는 집안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했다. 장성한 어른들끼리 보내는 명절이었다면 밥 먹고 치우고 수다 떨고 그러다 마음 상하고 했을 명절 분위기가 달라졌다. 9명의 어른들은 거실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조카 한 명을 바라보며 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고 행복해했다. 조카의 이름은 마치 돌림노래처럼 사방에서 불려졌고 조카의 일이라면 아무도 불평불만이 없었다. 조카가 시금치를 맛있게 먹으니 허리가 아파 복대를 찬 나의 팔순 노모는 당신의 텃밭을 시금치로 가득 채울 기세다. 큰고모와 작은 고모인 나와 동생은 조카와 놀아주느라 거실에서 춤을 추었고 어쩌면 곧 장가를 갈지도 모를 나의 아들은 마치 예비 아빠가 된 듯 아이랑 놀아주었다.


그 틈을 타서 늦은 육아로 지친 나의 막냇동생과 올케는 안마 의자에 앉아 쉬기도 하고 술을 한 잔 하기도 했다. 조카가 내 볼에 입을 맞추고 품 안에 쏙 들어와 안기면 장성한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이 지금 조카 나이일 때, 나와 남편은 매일이 치열했고 수면 부족과 과로로 어깨에 곰 한 마리를 짊어진 기분이었다. 매일이 피곤했고 아이들이 언제 빨리 커서 나의 휴일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될까 궁금했고 그리고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기도 했었다. 물론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웠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그 순간들을 온전히 즐기기에는 나의 30대와 40대는 너무도 빡빡하게 치열했다.


이래서 늦둥이 아이를 둔 부모들이, 그리고 손자 손녀를 얻은 조부모들의 아이 사랑이 한창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회사에서 매일 야근하며 개인의 성장에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시기의 육아보다 더 여유 있고 행복할 수 있겠다 싶다.


평범한 삶이 이어진다면 이후 10년 안팎이면 우리 아이들도 결혼과 출산을 하고 나에게는 손자 손녀가 생기겠지. 그 아이가 내 품에 쏙 들어와 안기는 날,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지금 조카를 바라보는 팔순 노모의 눈빛처럼, 허리가 아파도 텃밭을 가꾸게 만드는 그 눈빛처럼, 나도 그렇게 무언가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세대가 변하고 삶의 스타일이 달라져도,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을 테니.


집안의 서열은 나이 순이 아니라는 걸, 집안의 서열은 누가 가장 사랑받는 위치인지에 따라 나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권력이 없으면 어떤가. 주는 사랑만으로도 이미 충만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