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대학원생의 졸업사진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것

by 지혜로운 사자

50대에 시작한 MBA 과정이 끝나서 드디어 다음 주면 졸업식이다. 이 나이에 굳이 졸업사진을 찍어야 하나 망설이던 차에 함께 공부하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혼자 가기 뻘쭘하던 차에 잘되었다 싶고 사진을 핑계로 그 친구와 밥 한 끼 먹어야지 싶어서 스튜디오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친구가 대신 예약을 해주었다.


촬영 당일, 오랜만에 신경 써서 화장도 하고 머리도 정성 들여 드라이한 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예약제로 운영해서인지 다행히도 스튜디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학사모를 쓰니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릴 수 없어 귀 뒤로 넘겼다.


작가님의 디렉션대로 고개도 돌리고 어색한 웃음도 지어가며 몇 컷의 사진을 찍고 모니터링을 하는데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큰 화면 속 고해상도의 사진 속 나는 평소에 기억하는, 아침저녁으로 집안의 거울 속에서 마주하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노화로 얼굴 곳곳에 주름이 깊게 파였고 턱선의 탄력은 무너져 내렸으며 눈두덩은 아래로 처져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나의 사진들은 대부분 휴대폰 셀카모드로 찍거나 어플을 이용해 주름이나 잡티가 보이지 않도록 자동보정되어 나오는 사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나의 민낯을 대하는 게 너무도 오랜만이었나 보다. 마음 같아서는 잘 나올 때까지 여러 번 다시 찍고 싶었고 보정으로 얼굴 윤곽을 다듬고 주름을 없애고 싶었다. 내가 나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 당혹해하는 와중에, 같이 간 친구는 "표정도 좋고 사진 잘 받으세요!"라고 연신 외쳤다. 아마도 그 친구가 늘 보던 나의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리라... 그렇게 냉정하게 상황을 직시하자 더 이상 사진을 찍는다 한들 더 나은 사진을 얻기는 어렵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을 더 찍겠다는 억지 대신 작가님에게 읍소했다. "작가님! 제가 깜박하고 리프팅 시술을 못 받고 왔는데... 잘 부탁드려요~"라고. 작가님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아마도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오면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는가 보다.


친구와의 낮술 한잔으로 서운한 마음을 달래고 집에 돌아왔고 그날의 내 마음은 서랍 속에 처박아 놨다. 그깟 사진이야 나만 안 보면 그만이고 다른 이들이 본 들 그들에게는 실사 버전일 테니 누구에게도 이야깃거리가 되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며칠 후 비슷한 또래의 학교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혼자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나와 같은 상황으로 마음이 서운했나 보다. 그 친구와 통화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도닥거렸다. 그리고 우리의 지나간 젊음을 함께 아쉬워하며 그럼에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우리가 이루어낸 성취와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을 응원해 주었다.


아직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어떤 사진이 나오더라도 아쉬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지만 이 나이에 졸업사진을 또 찍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그것만으로도 나도 그리고 그 친구도 엄청나게 대견한 시간을 보낸 증거다. 우리는 우리의 늦깎이 공부를 무사히 해 냈고 그리고 우리의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을 살아내고 있다. 아마도 10년 후의 나는 이 졸업사진을 보며 '아~ 그때 참 젊었지...'라고 다시 말하는 날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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