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 "흥부와 놀부"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가르침 아래 "흥부는 착한 사람, 놀부는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흥부와 같이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적인 관념을 벗어나 놀부를 재평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놀부를 "심술굿은 구두쇠"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경제적 부를 이해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매우 놀랐다. 심지어 흥부를 대책 없이 아이만 낳은 무책임한 가장으로 묘사하기까지 한다. 경제적 가치가 중요시되는 시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견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흥부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생각해봐야 한다. "옛날 옛날"은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곧잘 쓰인다. 그 시대의 생활환경은 현재와는 크게 달라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무사히 생존할 확률이 낮았다. 영양뿐만 아니라 생활 위생과 의료 수준이 매우 낮아 태어난 아이가 첫돌을 맞이하기가 어려웠던 시대였다. 이런 이유로 100일을 무사히 넘기거나 첫돌을 맞이한 아이에게 성대하게 축하잔치를 해 주었던 것이다. 한편 생존율이 극히 낮은 곤충이나 동물의 경우에도 자신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것을 볼 수 있다. 생존할 확률이 낮다 보니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많이 낳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 모두가 종을 지키려는 생물들의 처절한 생존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략에서 흥부의 다산은 혹독한 환경에서 자신의 손(孫)을 남기기 위한 사회생물학적 선택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24년을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합계출생률 0.7이라는 저출생시대를 살고 있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에 낳은 아이 수가 1명도 되지 않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시기에 놀부의 가치가 재평가 받았듯, 저출생시대에 흥부의 다산은 어떻게 재평가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