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멜리에와 르누아르 그림
인생은 재밌어!
어릴 땐 시간이 안 가다가 갑자기 쉰 살이 되지!
Life changes in an instant!'
가끔씩 인생이 노잼이라고 느껴질 때면 연례행사처럼 다시 보게 되는 인생영화들이 있다. [비포 선셋, 미드나잇 인 파리, 물랑 루주, 줄리 앤 줄리아 그리고 아멜리에!]
어쩌다 보니 모두 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살고 있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꿈꾸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낙이 었던 그녀의 이름은 'Amelie 아멜리에 폴랑'이다.
20대의 그녀는 물랑 루주를 지척에 둔 동네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며 조용히 살고 있다. 고독의 성에 갇혀버린 아멜리에는 이따금씩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 엉뚱한 생각에 잠긴다. 파리의 전경을 바라보며 작은 즐거움을 찾아가는 그녀의 일상은 흥미롭다. 식료품점 곡식 자루에 손을 넣거나, 작은 스푼으로 크렘 부를레를 깨트리며, 생 마르탕 운하에서 물수제비 뜨기가 취미인 파리지엥의 그런 소소한 일상 말이다.
파리에 가면
이 사랑스러운 아가씨를 만날 수 있을까?
아멜리에를 떠올리며 몽마르트르 언덕에 다시 올랐다. 아멜리에처럼 사랑스러운 파리지엥과 함께 걸었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 전경엔 에펠탑이 없다. 광장 골목을 빠져나와 사잇길에 들어서야만 마침내 에펠탑과 조우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중에 하나다. 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파리를 느낄 수 있기에.
몽마르트르에서 본 파리 시내 &사크레쾨르 대성당
데카르트 광장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랜 후, 우리는 풍차 카페로 향했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과 오드리 토투의 <아멜리에>에서 배경으로 나온 그 카페, 레 뒤 물랭 Les deux Moulin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영화 속 예쁘장한 얼굴을 가졌던 그 아르바이트생이 없네.^^
'레 뒤 물랭'은 두 개의 풍차라는 뜻을 가진 동네 소박한 카페다. 영화가 상영된 지 십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멜리에를 기억하는 여행객들이 연일 끊이질 않는다. 카페 안은 이미 손님들이 나누는 각국의 다양한 언어로 가득하다. 이렇게 이야기, 이야기가 있는 풍경은 언제나 매력적인 드라마와 공간이 된다. 오늘 당신의 시간을 채워준 이야기는 무엇인지! 완벽하진 않아도 완전한 하루를 보낸 날. 꽉 찬 시간의 눈금을 세는 날엔 어느새 마음이 충만해진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닐 수 없다.
Luck is like the Tour de France. You wait,
and it flash past you. Raymond
"행운은 프랑스를 여행하는 것과 같아.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지. 넌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만, 그것은 섬광처럼 널 지나쳐가지.
붙잡을 수 있을 때 잡지 않으면 후회해."
영화의 스토리는 다소 엉뚱하고 유쾌하지만 봄 햇살처럼 따듯하다. 프랑스 특유의 유머와 미장센이 돋보여 볼 때마다 새롭다. 시종 다채로운 색감으로 눈을 뗄 수가 없는데, 그중 특별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씬이 있다. 아멜리에가 레이몽 듀파엘 아저씨를 만나는 장면이다.
뼈가 너무 약해 유리 인간이라는 별명을 가진 레이몽 할아버지는 집 밖에 나가지 않고 그림만 그린다. 아멜리에는 어느 날 그의 집을 방문하고 둘은 마음의 벽을 허물며 친구가 된다. 20년간 매년 르누아르의 작품 <뱃놀이의 점심식사>를 하나씩 모사하는 아마추어 화가의 말이 왠지 좋아 필사를 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제일 어려운 건 바로 '표정'이야! 그림 속의 인물들은 오래전에 죽었지만
화폭 위에서는 영원히 안 잊힐 테니까,
그들은 행운아들이다.라는 그 말
★ 여기서 잠깐! 르누아르의 그림을 짚고 가야겠다. 당시 유행이던 뱃놀이가 끝나고 센강 사토 섬 테라스에는 젊고 생기 넘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오후의 행복한 한 때를 나기에 여념 없어 보인다.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한 곳에 자리한 이들은 모두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친구들이다. 왼쪽 난간에 기댄 밀짚모자를 쓴 남자는 이 식당 주인의 아들이고, 반대편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이는 화가 카이유 보트다. (19세기 당시 부르주아였던 구스타브 까이유 보트는 파리의 멋진 풍경을 참 고급지게도 그렸다!) 꽃모자를 쓰고 강아지랑 놀고 있는 여인은 도리 알린 사리 고인데 르누아르의 모델이기도 한 그녀는 훗날 화가의 아내가 된다. 그래서일까? 화가의 사심으로 유독 빛나고 아름답게 그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드가의 압생트 그림에 등장한 파란 드레스의 우아한 여인도 보인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이 그림. 무리 속에 있지만 마음이 딴 데 가 있어서 도무지 표정을 잡을 수 없다는 뒤쪽에 앉아 물 잔을 들고 있는 이 여자. 영화 속 재밌는 두 사람(아멜리에와 레이몽)은 이 여인에 초점을 맞추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림 속의 여인은 '혼자만 다른 가 보다'라고 얘길 하며 아멜리에는 자기 자신을 곧 이 그림 속에 투영한다. 사람들과 잘 어울릴 줄 몰랐던 아멜리에는 어쩌면 저 여인처럼 외톨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웃들을 위해 깜찍한 계략을 하나씩 완수해가며 행복을 느끼던 그녀다. 아직 진정한 사랑을 몰랐던 아멜리에는 어느 날 불현듯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운명의 남자를 만난다. 복닥이는 파리 지하철 역에서! 그리고선 이렇게 귀여운 말을 툭 던진다.
'물 잔을 든 소녀는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마음이 끌리는 어떤 남자를요!'
사랑 안에는 한 순간 생각을 영원히 바꿀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는 법이다. 아멜리아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우리는 사랑의 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그러면서 마음의 키가 한 뼘 더 성장한다. 그 과정은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
따스한 햇살, 어느 기분 좋은 오후의 미풍, 도시의 크고 작은 소음들... 삶은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라고 깨닫는 몽마르트르의 이 귀여운 아가씨를 볼 때마다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되고 만다. 타인의 행복을 찾아주며 소박한 기쁨을 느끼던 그녀니까...
생의 마지막까지 류머티즘성 관절염에도 개의치 않고, 일상의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을 화폭에 담은 르누아르처럼 말이다. 영화와 그림의 힘을 받아 파리의 기분 좋은 풍경과 그녀처럼 통통 튀는 인사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아, 이제 지루한 겨울이 다 가고 마음의 봄이 찾아오려나 보다. 그립고 새롭다. 이 모든 것들이. by sarah
장미의 계절 5월 한가로운 파리의 얼굴
예술가의 천국, 몽마르트르 언덕 테르트르 광장 1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