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 드 방스에서
지중해의 푸르름을 닮은 화가, 마르크 샤갈
그가 영면한 예술가의 마을로 가다!
니스의 아침이다. 영국인의 산책로라 불리는 프롬나드 데 장글레 Promenade des Anglais를 따라 걷는다. 새벽부터 조깅 나온 현지인들로 바닷가는 벌써부터 활기를 띤다. 니스의 푸르름과 자유 그리고 열정의 색깔은 어쩐지 샤갈을 닮아있다.
유대인 화가로서의 유랑을 하며 격변의 1세기를 살았던 마르크 샤갈. 이곳 니스에 샤갈 미술관이 있어서 일까? 아니면 그의 인생 말년에 제2의 고향이라 명명한 코트다쥐르의 아름다운 마을. 생폴 드 방스가 인근에 있어서 일까. 프로방스의 아를에는 빈센트 반 고흐가 있는 것처럼, 남 프랑스의 지척엔 마르크 샤갈이 있다. 아침부터 니스의 매력에 빠져있다가 마침내 생 폴 드 방스로 향하는 400번 버스를 탔다.
시야가 확 트인 니스 해안가를 벗어나 덜컹덜컹 거리는 버스로 1시간 남짓을 달렸다. 구불구불 산등성이로 올라가나 싶더니 어느새 성벽으로 둘러싼 중세 마을이 눈 앞에 펼쳐진다. 생 폴 드 방스다!
생 폴 드 방스 Saint-Paul de Vence, 예쁜 발음이다.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 샤갈이 사랑한 그 마을을 오늘처럼 날 좋은 날, 느릿느릿 거닐고 싶었다.
마음으로 바라고 또 바라는 것들은 언젠간 꼭 이루어지는
법이다. 오랫동안 소원하는 것을 직접 온몸으로 느끼는 이 감정을 살면서 자주 맛보고 싶어 진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곧잘 시들시들해지는 이 삶에 활력을 보태 줄 테니까! 여행이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동네 입구에 다다르니 프랑스 여행의 상징 같은 록시땅이 여행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돌담으로 운치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라벤더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남 프랑스의 냄새다. 한국에는 없는 잇템들을 보며 그만 눈이 휘동 글해졌다. 항상 집으로 돌아와서 현지 물건을 안사온 걸 후회해왔던 터라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지인들에게 줄 몇 가지 선물을 샀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 매력적인 중세 마을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은 엄마와 딸의 열흘 간의 프랑스 여행이었다. 처음 프랑스 땅을 밟아본 엄마는 마냥 신기하고 행복해 하셨다.
작은 골목길에서는 길을 잃어도 괜찮아!
인생의 길 위에서도 길을 잃는 것처럼
마을안으로 인도하는 아치형의 입구. 저 문을 통과하면 동화처럼 예쁜 마을이 펼쳐진다. 샤갈도 저 곳 구석구석을 거닐었을까? 성벽 안으로 들어가니 16세기의 고풍스러움들이 여전히 살아 숨쉰다.
미로처럼 연결된 작은 골목길에서는 길을 잃어도 괜찮아! 걷다보면 어느새 또 새로운 길이 내가 가는 길의 안내자가 되어주니까. 돌담에 스치는 따스한 햇살이, 골목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남프랑스의 상쾌한 바람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샤갈을 비롯한 르누아르,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등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이 사랑했다는 마을. 그 화가들의 영혼과 마주 칠 것 같은 이 호젓한 장소는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아티스트들의 갤러리와 아뜰리에로도 가득하다.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유니크한 예술작품을 보는 즐거움도 크다. 길이름이나 표지판도 예술가들의 마을이라는 명성답게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감각이 묻어난다.
샤갈도 즐겨 다녔다는 교회 예배당에서 한 숨을 돌리고, 느릿한 걸음으로 마을을 다 돌아봤다.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어 길가에 핀 꽃들과 토실토실한 동네 고양이들 그리고 세월이 하나하나 덧입혀있는 돌담들을 눈에 새겼다. 마을 어귀로 다시 돌아가는 전망대에 서니 샤갈이 영면해 있는 공동묘지가 내려다 보인다. 남프랑스의 빛 속에서 마지막 예술의 꽃을 피웠던 그는 1985년 3월의 어느 날, 그의 아뜰리에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유대인으로서 망명길에 오르고, 영혼을 다 바쳐 사랑한 아내, 벨라를 잃고서도 그가 바라던 것은 언제나 한 가지. 단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시인의 날개를 지닌 화가, 마르크 샤갈의 무덤은 소박했다. 이 작은 마을처럼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입 밖에 낸다면.... 진실된 예술은
사랑 안에서만 존재한다.
여행을 다녀온지 시간이 흘렀지만, 사는게 바빠 글 쓸 여유가 없었다. 얼마전 M컨템포러리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마르크 샤갈 특별전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멋진 전시회들이 연이어 있어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단지 그림을 그린다는 화가의 태양같은 열정이 내게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by Sar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