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Sunset 제시와 셀린느가 걷던 길
내면의 풍경이라는 것이 있다. 영혼의 지형이랄까. 우리는 평생토록 그 지형의 등고선을
찾아 헤맨다. 데미지, 조세핀 하트
Promenade Plantée 프롬나드 플랑테
철길이 지나던 옛 고가도로 위에 만들어진
건물 위 산책로
매달 첫째 주 토요일, 루브르 박물관 무료 관람일이라 수많은 관광객이 루브르로, 루브르로 몰렸다. 징글징글하게 밀집되어 있는 인파를 빠져나와, 파리의 평범한 오후 속으로 오롯하게 걷고 싶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스트로베리 캔디’ 라 뒤 마레 마카롱 두 개를 포장해서, 바로 1호선 메트로를 탔다. 마카롱의 맛과 빛깔이 참 파리스럽다.
바스티유 역을 나와서 몇 분 걷다 보면 바로 다다르는 곳, 프롬나드 플랑테가 저기 보인다. "초록의 오솔길"이라는 의미의 Promenade Plantee 프롬나드 플랑테.
Viaduc des Arts " 예술고가 다리" 건물 계단 위로 올라서면 세상 호젓한 공중 공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Promenade Plantee 프롬나드 플랑테는 세계 최초의 고가 공원으로 1859년에 건설된 파리 철도의 일부였다. 바스티유부터 벵센 구간을 연결하는 철도가 완전 폐쇄된 이후, 1993년 4.7 킬로미터 길이의 기다란 공원으로 완공된 것이다. 뉴욕 맨해튼 웨스트사이드 ‘하이라인’이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를 원형으로 지어졌고, 서울 고가 공원은 뉴욕의 그것을 모델로 삼는다. 좌우지간 프롬나드 플랑테는 파리 시민들에게 싱그러운 녹색을 안겨주는 성공적인 도시 재생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내게 이곳은 영화 촬영지로서 그 명성을 더한다. 누구나 보면 사랑에 빠지는 영화, Before Sunset 비포 선셋을 기억하는가? 9년 만에 파리 셰익스 피어 앤 컴퍼니에서 재회한 제시와 셀린느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던 바로 그 산책로였기 때문이다.
파리지앵의 생활 속 공간을 들어선 이 느낌이 좋아, 도시 한가운데 편안한 녹지를 제공해주는 이 자연 쉼터가 사랑스러워서, 나는 토요일 오후에 긴긴 산책을 즐겼다. 바삭바삭한 6월의 태양빛을 내리쬐며 한참을 걸었다. 맑은 새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려와 음악을 들을 필요를 못 느꼈다. 다리가 아파오면 제시와 셀린느가 앉았을 법한 벤치에 앉아서 그들이 주고받던 대화들을 생각했다. 셀린느는 제시와 동행하는 그 길 위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얘기했다.
Memory is a wonderful thing
if you don’t have to deal with the past.
과거에 얽매이지만 않는 다면,
추억은 아름다운 거겠지.
그 해 여름엔 희망이 넘쳤는데...
아픔이 없다면 추억이 아름다울 텐데, 그래도 서로 다시 만났으니 추억을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저 길을 걸으며 두 남녀는 사람의 타고난 천성에 대해 얘길 했다. 명랑한 사람은 불구가 돼도 밝게 살 것이며, 우울한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자기 품으로 들여도, 금세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회기 할 것이라는 것이다. 즉 행복 설정값을 말하는데, 행복 설정값이란 사람마다 타고난 고유한 행복 기본 수준을 뜻한다. 즉 한 사람이 어떤 상황을 겪든지 결국은 그 행복지수가 처음의 설정값으로 되돌아가는 탄력성을 의미한다. 사람의 기질/성향 disposition 은 참 변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요즘 내가 든 소소한 깨달음 중에 하나였다. 사람은 누구나가 저마다의 특별함이 있으니까. 타고난 그 무엇, 내 안의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 까지 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세월이 가져다준 지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면의 풍경이라는 것이 있다. 영혼의 지형이랄까. 우리는 평생토록 그 지형의 등고선을
찾아 헤맨다. 데미지, 조세핀 하트
조세핀 하트가 말한 '내면의 풍경'이라는 말에 꽂혔는데, 있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꽃을 피우고 빛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그런 내면의 풍경을 가꿔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길을 나서면 나는 또 불현듯 헤매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거고, 그때마다 또 새로운 길을 찾으면서 그 지형의 등고선을 찾아내려 하겠지.
나이가 들면서 삶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제시의 말, 매일이 마지막인 이 삶만큼 더 소중한 게 어딨을까. 그런 소박한 깨달음이 마음에 뭉글뭉글 가득 해지는 날엔 글을 쓰고만 싶어 진다. 꼭 오늘처럼!
https://youtu.be/ofLUHwgOU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