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읽는 자들의 도시

부키니스트와 함께 걷는 파리

by Sarah Kim

센강가에 북가판대가 늘어선 이유


Je suis ici, mais mon cœur est à Paris.
지금 여기에 있어도, 내 마음은 파리에 있어.


Story#1


걷는 동안에 사랑에 빠지는 도시! 센강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초록 상자가 나란히 펼쳐진 풍경과 만난다. 그 안엔 낡은 책, 오래된 엽서, 아주 빛바랜 판화본, 세월과 함께 파리에 머물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것이 바로 파리의 북 가판대, 그 초록상자를 지키는 이들이 바로 부키니스트들(Les Bouquinistes)이다.

겨울, 파리의 오후

파리의 북가판대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전쟁과 혁명, 검열과 자유 사이를 오가던 시절, 공식 서점에서는 팔 수 없는 책들이 존재했다. 파리의 서적 상인들은 그 금서들을 강가에서 몰래 펼쳐놓기 시작했다. 책을 강가에서? 어느 도시에서나 물이 그 도시의 생명을 이어주듯 파리의 활기를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 어쩌면 책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읽는 여행자가 새롭게 발견하는 도시가 여기, 파리니까!

가을 파리의 오후
Les Bouquinistes de Paris.


이 도시에 걸맞게 이름부터 입에 감기는 부키니스트들이 16세기부터 있었다니! 처음엔 정부의 검열을 피해 ‘몰래’ 책을 팔던 이들의 스토리가 매우 흥미로웠다. 금서들을 팔며 ‘검열의 그물’을 피하다, 결국 물가로 도망친 책들이라고 하니 뭔가 호기심이 발동했다.


파리의 부키스트와 함께 걷는 여행


당시엔 짐짝을 펴듯 시작된 노점이었지만, 1859년, 나폴레옹 3세 시대에 공식적으로 북가판대 설치가 허용되었다. 단, 규격이나 색상은 ‘파리의 미관’을 해치지 않게 통일되었고, 지금 우리가 아는 녹색 철제 상자 형태는 이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낭만의 도시 파리는 책을 검열하는 대신, 그 책들과 공존하는 법을 택했다. 그 결과, 책이 거리로 나온 이 도시, 파리가 탄생한 것이다. ( 어떤 의미에서는 ^6^)


파리는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본질을 놓지 않는 도시다. 역설적이게도, 한때 감춰야 했던 지식의 상자들이, 이제는 파리의 얼굴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어도 북가판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담긴 ‘느린 시간’의 가치도 가끔은 소중하다. 오늘날 북가판대는 단순한 책 장수가 아니다. 그들은 거리의 큐레이터이며, 센강 위의 이야기 수집가다. 헌책뿐 아니라, 영화 포스터, 예술 판화, 중고 잡지, 잉크 냄새 가득한 시집들이 손때 묻은 채 기다리고 있다. 그 안엔 고서보다 더 진귀한 것—파리의 시간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센강을 걸어보았다. 여행자의 시선에서 보면 어떤 날의 파리는 읽는 자의 도시가 된다. 어느 가을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 Before Sunset 책의 한 챕터를 봤다.

내가 사랑한 영화, Before Sunset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작은 열쇠 구멍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우리는 삶 속의 모든 순간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누군가 글을 쓰려고 한다면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제시가 말한 그 문장을 읽으면, 나는 항상 20대였던 내 마음의 열정을 다시 만난다. 그것도 파리에서 말이다. 멋진 뮤지엄도, 카페도, 에펠탑도 아닌, 책장 사이에서 속삭이는 도시의 속마음을 읽는다.

내가 사랑한 파리

Story #2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파리는 근대화의 바람을 맞이한다. '파리의 역사'와 밀접하게 맞물리는 '미술사의 혁명'을 시작으로 '현대미술'까지...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선 수 많은 화가들.. 그 흐름의 궤적을 쫓아가는 것이 내 가장 큰 관심사 중에 하나였다.


퐁네프 다리에서 바라본 에펠탑


프랑스혁명 이후 파리는 세계 최초의 근대화된 도시로서 이례적인 변화들이 있었고,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Paris는 그야말로 '꿈의 도시'였다.


그 당시 미술시장과 개인 화랑들은 아직 발전 이전이었다. 혁명 이후 왕족과 귀족 그리고 성직자들의 전유물들이던 미술품들이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보통사람들도 그림에 대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그래서 화가 지망생이든 사교계의 사람들이던 루브르, 그 루브르박물관으로 많이 모이게 되는데..

루브르에서 오르세 미술관까지


19세기에는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살롱전'이 가장 큰 이슈이자 이벤트였다. 살롱전 출품작만 해도 한 번에 5000점이 넘었다고 하니까… 우리가 알만한 당시의 화가들 역시 이 살롱전에 출품을 해서 수상을 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오랜 숙원사업을 이루고자 분투했을 거 같다. 자신의 작품을 진열하고, 누군가에게 팔고, 명성을 얻기 위한 통로로 살롱전을 활용했을 테지만, 말이 쉽지 살롱전에 낙선한 화가들의 그림만 해도 대강당을 한가득 채웠을 것이다.


파리의 북 가판대가 들어선 이유

그렇게 오도 가도 못한 그림들을 판매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루브르 박물관 앞에는 판화와 모사화들이 주를 이루는 상점들이 생겨난다. 현재 노트르담을 시작으로 저 밑 오르세, 루브르까지 연결되는 하나의 거리. 그 자체도 하나의 예술이다.


파리, 거리의 서재

그렇게 세느 강변을 따라 늘어선 가판대는 이름 모를 화가들의 오랜 그림들과 고서적들이 우리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시중에선 절대 구할 수 없는 빈티지 아이템을 만나는 횡재를 누릴 수도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마시길!

읽는 자의 도시, 파리

냄새나는 것은 참아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파리지엥의 고집에 따라 거리마다 곳곳마다 예술적인 정취가 흐른다. 이상한 나라의 폴'처럼 시간이 장지 된 상태로 마냥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 더 좋다. 파리는 팔색조의 매력을 가진 도시지만, 어느 날이 맑은 오후, 진짜 파리는 책장 속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책장을 지키는 부키니스트가, 오늘도 파리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고 있다고 말이다. 오르세나 루브르에 들어가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오늘은 그냥 이 거리를 사부작사부작 걸어보면 어떨까! by Sarah

파리의 가을
매거진의 이전글지베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