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라파예트까지…

by Sarah Kim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라파예트까지…

샤갈, 꿈의 꽃다발을 지나
파리의 지붕 위를 걷다!


2024년 여름의 끝자락, 다시 파리에 도착했다. 올림픽이 막을 내리던 무렵. 축제는 끝났고, 파리는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제 막 스파클링 샴페인을 마신 잔처럼, 도시는 비워졌지만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여행가방을 주섬주섬 꾸리는 이유는 뭘까? 그중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여행을 끝마친 후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함이다'라고 나는 당당히 말하고 싶다.

2024 파리 올림픽의 심볼들


좌우지간, 그날 샹젤리제 거리엔 아직도 국기를 목에 건 소년들이 있었고, 그랑팔레와 앵발리드 앞의 철제 펜스는 해체 중이었다. 아주아주 천천히, 세월아 내 월아!


잔디밭에 누워 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그 자리에 모래 묻은 흔적만 남아있다. 눈부셨던 승리의 순간들은 어제의 꿈이 되었고, 거리의 조명은 다시 일상 모드로 전환 중이다. 살아생전 파리 올림픽이라니! 이 도시는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장소니까! 천정부지의 에어프랑스 비행기값이 올림픽 끝무렵에는 뜻밖에 특가혜택이 있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한 핑계도 있었지만 세렌디피티라고 생각했다.


2024 파리올림픽


좌우지간 파리의 진짜 매력은, 항상 그 ‘다음 날’에 있다. 화려한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조용히 커피잔을 닦는 카페 주인과 다시 ‘루틴’을 꺼내드는 파리지앵들 말이다. 일상의 위대함이 항상 여기에 있다. 리옹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나오는 길, 여기저기 사람들의 몸짓에서 올림픽 굿즈와 참가자 배지가 덜렁였다. 누군가의 꿈이 일상과 겹쳐진 흔적처럼 보였다.


에펠탑은 여전히 당당했고, 센 강은 아무 일 없던 듯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조용한 파리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

파리의 일상

파리는 조금은 과장된 도시다. 카페 의자마저 골목을 향해 진열되어 있고, 빵 하나에도 철학이 담겨 있고, 심지어 하늘도 매일 그림을 바꿔 그린다. 오늘은 이 과장된 도시에 어울리는 가장 극적인 장소부터 시작해 보자.



오페라 가르니에

내가 사랑하는 파리의 색깔들


1875년에 완공된 이 오페라는 제2제정 시대의 화려한 신고전주의와 바로크 양식의 절정이라 불린다. 젊은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설계한 이 극장은


단 하나의 공연도 없이도,
건물 그 자체가 하나의 무대


라는 찬사를 들었다. 황금빛 조각, 대리석 기둥, 벽화와 거대한 샹들리에까지—이곳은 미학적으로 ‘과잉’이라는 단어마저 예술로 승화된 공간이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그 아름답고 웅장한 계단을 오르면, 누구나 무명의 여행자가 아니라, 지금 막 리허설을 끝낸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천장을 본다. 샤갈의 천장화.


꿈의 꽃다발


천장을 올려다본 순간,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샤갈의 꿈 안을 조용히 유영하는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꿈의 꽃다발


오페라 가르니에 한복판, 거대한 샹들리에 위로 펼쳐진 둥근 그림. 붉은말이 허공을 질주하고, 초록색 바이올린이 공중에서 연주되고, 파랑과 노랑의 연인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음악과 사랑, 연극과 시간—이 모든 걸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샤갈스럽다’는 말밖에 안 떠오른다. 그는 정말, 현실은 무겁고 꿈은 가볍다는 걸 아는 예술가였다. 오랜 망명의 세월에도 샤갈은 자신만의 꿈을 관철해 간다. 이것이 샤갈이 위대한 화가이자 내가 그를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유다!


'이론이나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새처럼 자유로이 노래하고 싶었던' 화가의 마음이 천재 건축가의 그것과 아주 탁월하고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샤갈의 저널이 너무 좋아 나는 오래전부터 탐독하고 있었다. 그 날은 작정하고 꿈의 꽃다발 디테일한 부분까지 찍어 봤다. 고개를 정말 젖히고 카레라 셔터를 눌려야 했지만 그마저도 어찌나 행복하던지! 정말이지 가장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샤갈, 꿈의 꽃다발 디테일
10년 전에 앙드레 말로 씨가 나에게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새 천정화를 그러 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고, 감동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밤이나 낮이나 나는 오페라 하우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건축가 가르니에의
천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윗부분에서 배우와 음악가들의 창작활동을
아름다운 꿈속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묘사하고
싶었고, 아랫부분에서는 관객들의 의상이
일렁이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론이나 방법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새처럼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었다. 오페라와 발레음악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작업에 임했다.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색채도,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
마르크 샤갈, 1964년
꿈의 꽃다발 샤갈 작업


샤갈 자신이 이 천장화를 가리켜 “꿈의 꽃다발”이라 불렀다. 그의 색은 물감을 흘렸다기보다는, 마치 자기 마음의 감정을 풀어놓은 것 같다. 붓 대신 심장으로 그린 듯한 그림.


꿈의 꽃다발 디테일


나는 한참을 고개를 젖히고 서서 감탄하고 있었다. 목이 아파왔지만 참을만 했다. 그 순간, 내 머리 위엔 오페라 하우스 대극장의 천장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가 떠 있었으니까.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놀라운 작품을 대면하고 난 직후에는 잠시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어쨌든 이 감정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게 아쉬워,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향했다. 또 다른 파리의 천장을 보러 ^^


갤러리 라파예르 백화점 루프탑에서


겉보기엔 그냥 대도시의 고급 백화점이지만, 안에 들어서는 순간 입에서 “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100년이 넘은 아르누보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돔 천장. 바로 이 백화점의 심장이다. 둥근 돔 천장은 마치 빛의 만화경처럼, 시간대마다 다른 색으로 또다른 감탄을 부른다. 우리의 눈은 자꾸만 위를 향했다.



층을 오를수록 매장은 볼거리도 다양해지고, 사람들은 북적인다. 그냥 천장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쇼핑의 욕망이 잠시눌린다면 오버일까? 어쩌면 이곳은 예술의 껍질을 입은 소비의 성전이다! 그렇지만 나같은 사람에게 뭐니 뭐니 해도 이 공간의 휘날레는 라파예트 루프탑이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갈아타고, 마지막 계단 몇 개를 오르면 파리가, 정말 말 그대로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내가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 중 하나다!


파리의 지붕위에서 보낸 오후


에펠탑이 저 멀리서 “여기 있어요”라고 손 흔들고, 몽마르트르 언덕도 살짝 몸을 비틀어 시선을 끈다. 도시는 붉고 푸르고 회색이고, 파리의 하늘은 오늘도 예술이다. 크루아상 하나 들고 루프탑 테라스에 앉아 있으니, ‘그동안 또 수고했다’라고 바람이 토닥토닥해 주는 것 같다.


오늘 나는 오색빛 시시각각 변하는 다채로운 하늘을 봤다. 오페라 천장에 그려진 꿈의 하늘, 라파예트 지붕 위에 펼쳐진 에펠탑이 있는 하늘…


축제가 막 끝난 낭만 도시의 그 하늘이 아름다워서,

이제야 뒤 늦은 일기를 썼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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