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파리

일상의 예측가능함이 가져다 주는 편안함

by Sarah Kim


파리에 살면 살수록 나는 무언가 할아버지 시대의 자명 시계처럼 구닥다리 톱니바퀴가 고장이
날듯하면서도 용케도 잘 돌아가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고 그에 동화되었다.

그 편안함의 정체는
바로 삶이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프랑스식 편안한 삶’의 정체다.
조승연, 시크:하다 중에서
파리의 아침


#S1. 그는 회사가 끝나면 에펠탑 주변을 산책하는 평범한 파리지엥이었다. 사이요 궁에서 바라본 에펠이 근사하다며, 잔디에 앉아 쉬어 가자고 했던 그 남자. 서머타임엔 밤 10시가 돼야 에펠의 불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처음 말해준 사람이었다. 일상이 버거워, 조용히 파리에 갔던 나는 어김없이 에펠탑 근처에서 조깅하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났다. 참, 파리라는 도시는, 파리 사람들은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그대로구나. 그와 조우하면서 반가움이나 설렘보다는 늘 곁에 있는 공기처럼, 푸르른 5월에 부는 미풍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파리의 정오

#S2. 빛바랜 올리브 그린 색깔의 미라보 다리위에서.. 그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과 이야기들이 꿈틀대는 이 도시를 참 오랫동안 사랑해왔다. '파리에서 글 쓰고 사는 것'이 평생 꿈이라는 내 말을 그는 절대로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용기백배되는 말만 했다. 그 말의 씨앗이 내 안에서 꽃 피울 날이 오겠지!우리의 인생은 결코 통장의 잔고나 숨쉰 햇수로 평가받을 수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살아가면서 얼마나 숨막히게 벅찬 순간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속도를 얻으면 내 안의 풍경을 잃는다. 그래서 내가 본 아름다운 풍경들을 기억하기 위해 글자로 나만의 우주를 짓는다.

오후 6시의 파리

#S3. 개선문 전망대에 올랐을 때, 파리는 한 장의 파노라마처럼 나를 감쌌다. 정면엔 라데팡스가, 뒤로는 샹젤리제가 흐르고, 작은 회색 지붕들이 낮게 포개지듯 겹쳐 있었다. 도시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한가운데 나는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사람처럼 서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전망대는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각도로, 내가 지나온 길을 다시 보게 하니까. 멀리 보이는 에펠탑, 그리고 그 아래 어딘가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여기저기 나를 반긴 거리와 카페, 그리고 낯선 듯 친숙했던 파리의 공기.


파리의 풍경은 언제나 정지된 이미지처럼 눈에 남는다. 그리고 그 안엔 내가 웃고, 걷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찰나들이 숨 쉬고 있다. 결국 이 도시가 특별한 이유는, 그 속의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나의 작은 일상들 때문이었다. 파리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여전히 파노라마처럼 흐르고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

#S4. 파리에 오면, 또 다시 에밀리 인 파리를 본다. 이번엔 다른것 좀 봐야지! 하다가 결국 또 본다. 모두가 “저건 진짜 파리가 아니야”라고 말하지만,이상하게도, 파리에 도착한 첫날은 킬킬거리며 이 드라마를 다시 틀게 된다.


현실의 파리는 그리 유쾌하거나 핑크빛이 아닐 때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환상은 이상하게도 이 도시를 걷는 내 마음 어딘가에 꼭 붙어 있다. 빨간 베레모는 쓰지 않았지만,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에밀리가 걷던 거리에서 커피를 마신다.


파리에 오면, 현실과 낭만 사이 어딘가를 걷는다. 진짜 파리는 내 두 발 아래 있지만, 마음 한켠엔 여전히 “Bon appétit!”하며 웃고 있는 픽션 속 에밀리가 살고 있다.

매년 그렇게 나는 익숙한 파리를 기억한다. always, Paris !

나만의 작은, 파리 루틴
일상의 즐거움

일상의 작은 순간순간들이,

사실은 가장 정직한 시간의 기록이라는 것을

오르세의 시계탑에서 다시한번 배웠다. Sarah

오르세 미술관, 시계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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