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라크루아 뮤지엄에서 느껴본 자유
비 오는 파리, 생제르맹 데 프레의 조용한 골목
비 오는 파리의 오후는 운치 있고 낭만적이지만, 가끔은 우울하다. 그럴 때는 센 강 왼편, 생제르맹 데 프레 쪽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관광객은 드물고, 카페 의자는 비를 피해 안쪽으로접혔고, 우산은 도시의 풍경을 소리 없이 두드렸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며 날이 싸늘할 땐, 몸을 따듯하게 녹여줄 핫초코가 꼭 생각난다. 생제르맹 데 프레 역에 내려 들라크루아 뮤지엄에 가기 전 '카페 레 데 마고 Les deux Magots'에 먼저 들른 이유다. 빗물이 유리창을 똑똑 두드린다. 옆에 펼쳐놓은 작은 노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믈렛에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자유란, 거리에서 핏대를 올리며 외치는 것도 맞지만, 때로는 이렇게 한 잔의 핫초코에 담긴 소소한 행복의 모양으로도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혁명의 도시답게, 어느 누가 건물 벽에 프랑스어로 자유 Liberté 를 써놓았다.
자유는 때로 피를 흘리며 전진하고,
평화는 정원에 머문다
파리 들라크루아 미술관에서
들라크루아 뮤지엄은 아틀리에와 정원으로 이뤄진 아주 아담한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들라크루아가 마지막 6년 반 동안 살았던 곳이다. 1929년, 모리스 드니, 앙리 마티스, 폴 시냐크 같은 화가들이 이곳을 기념 공간이자 문화유산으로 지킬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지금도 들라크루아 뮤지엄은 그의 일상, 정원, 드로잉, 서신을 기록한 가장 개인적인 예술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다. 소박한 이곳의 풍경은 마치 루브르에서 마주한 ‘자유의 여신’의 격렬함과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생각보다 조용하고, 생각보다 작고, 생각보다 더 들라크루아 같은 이 공간. 벅적벅적 인산인해를 이루는 뮤지엄에 지쳤다면 고요한 사유의 이 공간도 추천한다. 특히 비 내리는 오후엔^^
Musée National Eugène‑Delacroix, 6 rue de Fürstenberg, 75006 Paris France
개관일: 수 – 월(화요일 휴관) : 9:30 ~ 17:30, 입장료: €9
파리 뮤지엄 패스: 루브르 박물관 티켓을 가지고 있다면 Delacroix 입장 무료
조용한 들라크루아 뮤지엄, Rue de Furstenberg의 어느 오후
La vue de mon petit jardin et l’aspect riant
de mon atelier me causent
toujours un sentiment de plaisir.
Eugène Delacroix,
Journal, 28 décembre 1857
나의 작은 정원을 바라보는 것과
웃음을 머금은 나의 작업실의 모습은
언제나 나에게 기쁨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1857. 12.28 외젠 들라크루아, 일기 중에서
들라크루아 뮤지엄은 거대한 ‘자유의 여신’을 외치는 남자의
조용한 뒷모습 같이 보인다.
정원은 작았다. 화려한 조각도, 분수도 없다. 하지만 그곳엔 세상을 그려낸 손이 잠시 쉬던 흔적이 있었다. 비를 머금은 그 정원 위로 나는 들라크루아의 문장을 떠올렸다. 혁명을 그린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작은 평화에 머물렀다니. 루브르의 ‘민중을 이끈 자유의 여신’을 떠올리다!
아주 어릴 때부터 미술교과서에 나왔던 프랑스 낭만주의화가의 이 작품, 자유를 위해 싸운 이들의 기억에 경의를 표한다. 이 그림은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을 배경으로, 들라크루아는 칼이 아닌 붓으로 혁명을 기록했다. 화면 중앙, 가슴을 드러낸 여인 ‘마리안’은 프랑스의 의인화된 자유다. 그녀는 오른손에 삼색기, 왼손에 총을 들고, 민중을 이끌며 무너진 시체 위를 걷는다. 그녀 뒤엔 다양한 계층의 인물이 따라오는데, 모자 쓴 노동자, 고급 복장의 부르주아, 어린 소년까지. 이건 단지 혁명이 아니라, 모두의 자유를 위한 행진이라는 상징이기도 하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그 광기는 굉음처럼 불타오르는 듯했다. 들라크루아는 칼을 대신 붓을 들었다는 파리의 멋쟁이 화가라고 생각했다.
광주 출신인 나는 어린 시절부터 민주화항쟁에 대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와 투쟁의 시간을 보아왔다. 얼마 전 선거를 마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생략 —.—
다시, 정원으로
조용한 정원으로 돌아오자 비는 여전히 잎사귀를 두드리고 있었고, 초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혁명은 광장에서 일어나지만, 그 혁명을 견딘 영혼은 작은 정원에 숨어있다.
들라크루아는 거대한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마음은 이 작은 작업실, 웃고 있는 창문, 그리고 늦가을을 지나쳐 가는 나무 아래에 있었다. 칼을 대신 붓을 들었다는 파리의 멋쟁이 화가의 소박한 정원이 참 맘에 들었다. 들라크루아 뮤지엄은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파리의 뮤지엄은 올때마다 새롭다!
그날의 비 덕분에, 파리는 또 한 편의 조용한 혁명이 되었다. 내 안에서. 예술을 사유하는 날엔 어느새. 일상을 끌어안는 힘이 생긴다. 참 고마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