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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Kim May 12. 2016

빛의 정원, 모네의 지베르니에서

수련연못에 빠진 날

우리가 산다는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의 밖에 내 삶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잘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빛과 그늘, 땅과 나무들의 냄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충만하게 끌어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꽉'끌어안지 않는다면 어떤 삶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장석주 <느림과 비움> 중에서
5월, 지베르니 모네의 집 앞,아이스크림 차

계절의 여왕, 5월에 바라본 프랑스의 인상은 세상 아름다움을 다 끌어안은 '5월의 신부'처럼 빛납니다. 곳곳마다 화양연화를 이루고 있는 봄꽃들, 새순을 내고 어느새 울울 창한 그늘을 만드는 싱그러운 나무들, 걸음걸음마다 살랑이는 기분 좋은 바람,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너. 아, 언제나 그랬듯 행복이란 소소한 것들 속에 깃들여져 있습니다. 장석주의 글을 되새기는 이 시간. 내 마음에 충만하게 들어온 봄 햇살은 겨우내 깊이 그늘진 그 곳까지 따스하게 비춰 줍니다.

모네의 지베르니 가는 길, 프랑스의 작은 시골 베르농의 노란 들판
모네의정원, 지베르니 가는 길 옆 모자가게

빛을 탐하던 화가, 그야말로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클로드 모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은 제게 <지금 이 순간의 빛과 그들, 땅과 나무들의 냄새,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충만하게 끌어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으니까요.

지베르니, 모네의 집
저는 제 맘에 꼭 드는 집과 풍경을 찾을 겁니다.


모네가 1883년 4월 5일 뒤랑 뤼엘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얼마나 마음의 풍경을 찾아 헤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모네의 집 튤립으로 만발한 뜰

마흔이 넘어 안정을 찾고 정착을 하고 싶었던 모네는 프랑스 전국을 샅샅이 뒤져 결국 지베르니를 발견합니다. 파리 외곽의 시골이 너무 맘에 들어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대작을 그릴 수 있겠다고 기분 좋은 예언까지 하면서 말이에요. 그는 곧 너무나 멋진 이 지베르니에서 황홀경에 빠지곤 했어요. 그렇게 인상주의의 아버지 모네에게 있어서 지베르니는 지상천국과 같은 영감의 장소가 되었고 수련 연작과 같은 대작들을 줄줄이 남기게 됩니다.

지베르니,수련이 있는 연못 Water Lily Pond
지베르니, 빛의 변화를 잡아두기 위한 모네의 정원

19세기 많은 화가들의 영감이 되어준 '생 라자르 역'에서 북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작은 시골마을 지베르니에 다다릅니다.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모네의 정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세요!

인생의 봄날, 내 인생에 봄날 같은 그 누구와 꼭 같이 그 길을 동행하길 권합니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빛을 담아낸 한 화가의 필치가 가슴 한 복판에 새겨져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테니까요. 모네의 수련 연작을 좋아해 언젠가 직접 모네의 정원을 한가로이 거닐어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직접 그의 그림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지베르니, 모네의 수련이 있는 정원에서

모네의 수련, 파리에 갈 때마다 들렀던 오랑주리 미술관. 자연채광으로 잘 알려진 참 산뜻하고 아담한 공간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념하기 위해 모네는 수련 연작 2점을 국가에 기증하기로 합니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타원형 형태에 맞춰 이 연로한 화가는 특별한 프로젝트에 들어갔지요. 당시 모네는 백내장을 앓고 있어서 이 작업을 완수하기까지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어요.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방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모네의 수련연작이 있는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수련 연작

모네는 다른 화가에 비해 비교적 장수한 덕에 다작의 작품을 남겼지요. 그 화가의 눈에 반영된 '물, 수련, 나무'들이 하얀 방 벽면 가득 롱 테이크 샷처럼 수려하게 펼쳐집니다. 지베르니 자택 내 연못에 뜬 수련이 병풍처럼 미술관을 감싸고 있었지요. 이 그림이 전시될 당시 어느 비평가는 '창의성이 떨어진 거창한 장식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으나 평가는 오롯이 감상자의 몫이죠.

모네의 수련연작

저는 미술관을 일부러 오후 늦게 찾아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클로징 시간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별로 없기도 해서 오롯이 나만의 느낌을 가지고 그림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좌우지간 이런 대작을 우리에게 남겨준 클로드 모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래서 그런지 화가의 눈에 비친 수련 연못을 직접 목격했을 때의 감동은 사뭇 남다를 수밖에 없었답니다.

빛을 가득 머금고 있는 모네의 수련
모네의 정원에서 보낸 오후

자, 이제 화가의 집안 풍경은 한번 어떤지 들어가 볼까요. 입구를 들어서면 일본 우키요에 판화가 대거 소장된 푸른 방을 거쳐 바로 모네의 스튜디오로 향합니다. 늘 빛을 관찰하고 탐구하던 빛의 화가 모네에게는 하루 온종일 햇살이 가득 필요했을 터. 그의 작업실과 침실은 넓은 창이 정원을 향해 열려있었습니다.

지베르니, 모네의집 입구
방 안 가득 햇살이 들어오는 모네의 스튜디오
모네가 수련 연작에 몰두하던 장소
집은 그 주인의 얼굴을 닮은 것처럼 90년이 지난 지금도 모네가 사용하던 가구들, 그림들이 모네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었습니다.
일본 판화 우키요에의 푸른 방, 모네 친구들의 그림이 전시된 침실, 다이닝룸과 주방

오후 늦게 파리로 돌아와 미술관 앞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럴 땐 '뉴델라 크라페'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기 아주 좋아요! 그리고 또 하나의 달콤한 꿈을 이룬 것에 대해 한참 동안이나 친구와 수다를 떨어야 했지요. 내가 바라던 그 장소에 직접 발을 내딛고, 그 순간순간을 반영하는 글을 써보는 이 시간. 행복은 바로 그 순간에 맛보는 크레페와 같네요. By Sarah

Bon Appetit !
오랑주리 미술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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